【 2011고합1231 사건】
: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2는 2010. 6. 2. 실시된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현직 교육감이고, 피고인 3은 ♡♡♡♡대학교 법학과 교수로서 피고인 2의 친구이다.
누구든지 교육감 선거와 관련하여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 목적으로 후보자이었던 사람에게 금전·물품·차마·향응 그 밖에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제공받아서는 아니된다.
2010. 6. 2. 실시된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와 관련하여 2010. 4. 14. 상피고인 1 등이 참가하지 아니한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피고인 2가 진보진영의 단일 후보로 선출되고, 2010. 5. 14. 실시된 투표용지 게재순위 추첨식에서 보수진영 공소외 1 후보는 기호 1번을 뽑았으나 피고인 2 및 상피고인 1 등 진보진영 후보들은 희망하던 기호 2번을 뽑지 못하고 그 당시 여론조사 결과도 공소외 1 후보가 1위를 차지하자 피고인 2 및 진보진영에서는 선거의 승리를 위해 진보진영 후보들의 단일화가 절실하였다.
피고인 2는 2010. 5. 중순 무렵 자신의 상임선대본부장 공소외 6, 선거기획특보 공소외 12와 함께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를 논의하기 위해 피고인 1과 그의 선대본부장 공소외 4를 만나 후보 단일화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 후 같은 달 18. 다시 만나 상피고인 1이 후보자 사퇴를 하고 피고인 2로 후보 단일화를 하면 피고인 2가 상피고인 1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한편, 서울특별시 교육감에 당선될 경우 피고인 2와 상피고인 1이 정책연대를 하고, 상피고인 1에게 서울특별시 교육청 정책자문기구 위원장을 맡기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양측 실무진 간에 ‘경제적 지원’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선거비용으로 지출한 7억 원을 보전해 주기로 하는 내용 등에 관하여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졌으나, 각서 작성 문제로 논란을 빚다가 상피고인 1의 유세차량 대여계약 처리 문제 등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이로 인해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2010. 5. 19. 피고인 2 측 회계책임자 공소외 5와 공소외 6이 상피고인 1 측 공소외 4와 다시 만나 추가로 협상을 진행하여 공소외 6의 보증 하에 상피고인 1에게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7억 원을 주고 서울특별시 교육청 정책자문기구 위원장 직을 제공하기로 하는 합의안을 도출한 후 피고인 2와 상피고인 1에게 각자 직접 보고하여 최종 합의하였다.
피고인 2와 상피고인 1은 위 합의에 따라 2010. 5. 19. 18:30경 환경재단 ☆☆☆☆☆홀에서 개최된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상피고인 1은 피고인 2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후보자 사퇴를 선언하는 등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를 이룬 다음, 2010. 6. 2. 피고인 2가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피고인 2가 서울특별시 교육감에 당선된 후 위 후보단일화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자, 상피고인 1은 2010. 8.경부터 같은 해 10.경까지 사이에 직접 또는 공소외 4 등을 통해 피고인 2 측 협상 실무자들에게 위 후보 단일화 합의 내용 이행을 요구하였고, 이에 피고인 2는 2010. 10.경 친구인 피고인 3과 교육감직 인수위원회 비서실장이었던 공소외 7에게 피고인 1을 대신 만나 합의내용과 요구사항을 들어보고 합의 이행 문제 등의 해결을 부탁하였다.
이에 피고인 3 등은 2010. 11. 중순경부터 같은 12.경까지 사이에 상피고인 1과 수회에 걸쳐 만나 상피고인 1의 요구사항을 청취하고 상피고인 1에게 지급할 금원의 액수와 지급 시기 등을 조율하면서, 피고인 2, 피고인 3 측에서 선거사범 공소시효를 ‘선거일 후 6개월’로 잘못 알고 이를 의식하여 상피고인 1에 대한 금원 지급을 지연시키는 한편 피고인 2는 피고인 3과, 상피고인 1에게 지급할 금액에 대하여 협의하여 2억 원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피고인 2와의 협의 결과에 따라 상피고인 3은 2011. 1. 중순경 피고인 1에게 후보 단일화 합의 이행 명목으로 7억 원 중 2억 원을 지급하되 여러 번 나누어서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서울 (이하 생략)에 있는 ♡♡♡♡대학교피고인 3의 연구실에서 피고인 2의 처형인 공소외 10으로부터 피고인 2의 돈을 교부받아, 상피고인 1의 부탁을 받은 그의 동생 공소외 9에게 2011. 2. 19.경 현금 5, 000만 원을, 2011. 3. 7.경 현금 4, 000만 원을, 2011. 3. 10.경 현금 100만 원을, 2011. 3. 24.경 현금 900만 원을, 2011. 4. 6.경 현금 5, 000만 원을, 2011. 4. 8.경 현금 5, 000만 원을 각 제공 하는 등 총 6회에 걸쳐 상피고인 1에게 위 후보 단일화 합의 이행 명목으로 합계 2억 원을 제공하였다.
또한, 피고인 2는 위 후보 단일화 합의 이행을 위하여 2011. 6. 17.경 상피고인 1을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한 후 부위원장으로 선출되도록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 2, 피고인 3은 공모하여 상피고인 1에게 2010. 6. 2. 실시된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와 관련하여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 목적으로 2억 원의 금원을 제공하고, 피고인 2는 상피고인 1에게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직을 제공하였다.
2. 이 사건의 쟁점
피고인들은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고인 1이 피고인 2로부터 2억 원을 제공받은 부분’과 관련하여는 그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 다만 그 대가성을 다투고 있다. 또한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피고인 1이 피고인 2로부터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직을 제공받은 부분’과 관련하여는 제공행위로 평가할 만한 피고인 2의 행위 자체가 없었다고 다투고 있다.
따라서 범죄의 구성요건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피고인들의 행위가 유죄로 인정되는지 여부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쟁점은 ① 이 사건 선거 당시 후보를 사퇴한 피고인 1의 행위와 위 2억 원 사이에 대가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 ②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직을 제공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행위를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이고, 더 나아가 만약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직을 제공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행위를 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면 위 부위원장 직에 대하여도 앞서 본 대가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공소사실의 특징은, 공소장 자체에 피고인들이 위 2억 원을 주고받게 된 경위에 대하여 ‘2010. 5. 19. 후보 단일화 당시 피고인 1과 피고인 2 사이에 피고인 1이 피고인 2로부터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7억 원을 지급받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고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고, 검사는 제1회 공판기일에서 이 사건 공소제기의 취지가 ‘후보 단일화 당시의 금전 지급 합의를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위 합의는 대가관계의 인정의 주요한 정황사실이다.’라고 주장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피고인들 및 변호인들은 역시 앞서 본 법률적인 쟁점에 대한 판단의 전제 사실로 ‘후보 단일화 당시 피고인 1과 피고인 2 간에 금전 지급 합의가 이루어진 바 없다.’고 강하게 다투고 있다는 점에 있어, ‘위와 같은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 자체가 큰 쟁점으로 부각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i) 피고인 2와 피고인 3 및 이들의 변호인들은 후보 단일화 협의 당시 피고인 2가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금전 지급을 요구하는 피고인 1 측의 요구를 일관되게 거절하였다고 주장하고, ii) 나아가 피고인들 및 변호인들 모두는 공통으로, 피고인 2 측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 지위에 있던 공소외 6과 회계책임자인 공소외 5가 2010. 5. 19. 피고인 1의 부탁을 받고 찾아 온 피고인 1 측의 선거대책본부장 공소외 4를 만난 자리에서 피고인 2의 의사와 무관하게 ‘피고인 1에게 선거비용 보전 명목의 금전을 지급하기로 하는 취지의 합의’(이하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라고만 한다 )를 한 뒤 그러한 합의사실을 피고인 2에게 숨긴 채 조건 없이 후보 단일화가 되었다는 취지로만 보고하였고, 이 때문에 피고인 2는 위와 같은 합의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가 이 사건 선거가 끝나고 수개월이 지난 2010. 10. 중순경 뒤늦게 위와 같은 합의가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앞서 본 ①, ②의 쟁점들을 직접 검토하기에 앞서 우선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i) 과연 피고인 2가 후보 단일화 당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보고받아 인지하거나 승인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먼저 판단하고, ii) 그 후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이 사건의 전체적인 사실관계를 살펴 본 뒤, iii) 그에 비추어 위 ①, ②의 법률적 쟁점들을 차례로 검토하기로 한다.
3. 피고인 2가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선거 당시부터 알고 있었는지 여부
가. 정황사실에 의한 사실인정을 함에 있어 적용되는 법리
이 사건에서는 기본적으로, i) 공소외 6과 공소외 5가 스스로 피고인 2에게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숨긴 것을 인정하고 있고, ii) 검사가 제출하는 모든 증거들을 살펴보더라도 ‘피고인 2가 후보 단일화 당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인지하고 승인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피고인 2가 위와 같은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황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직접 증거가 없는 경우에도, 간접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정황사실에 논리와 경험칙을 적용한 결과 요증사실이 진실한 것으로 추단되는 경우라면, 그러한 정황사실만으로 요증사실을 인정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나아가 이 사건에서 검사가 주장하는 후보자 간 금전 지급 합의와 같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개입하여 은밀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행위의 경우에는 직접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어 정황사실에 의한 입증이 불가피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정황사실에 의한 요증사실의 추단은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정황사실과 공소사실의 연결 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그 연결에 합의적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야 하고, 무엇보다 그 연결에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반대사실, 즉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나 정황이 없어야 한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도13226 판결, 대법원 2000. 2. 25 선고 99도1252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의 정황사실들로부터 인정되는 사실관계의 내용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검사가 제시하는 정황사실과 ‘피고인 2가 후보 단일화 당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인지하고 승인하였다.’는 요증사실(이하 ‘피고인 2의 합의 승인 사실’이라고만 한다) 사이의 연결 상태가 논리와 경험칙의 측면에서 충분히 긴밀하지 못하다. 그 뿐 아니라 이 사건에서는 검사가 제시하는 정황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반대사실 및 정황이 다수 존재한다. 위와 같은 반대사실 및 정황은 아래 ‘라.항’ 및 ‘제4. 나. (1) 내지 (5)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객관적인 증거들 및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증인들의 진술 등에 의하여 모두 사실로 인정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하는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 2의 합의 승인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할 뿐 아니라, 오히려 ‘피고인 2는 이 사건 선거가 끝나고 수개월이 지난 2010. 10. 중순경 뒤늦게 위 합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이 이 사건의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하여 이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다. 검사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정황사실에 관한 판단
검사가 주장하는 ‘피고인 2의 합의 승인 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정황사실들을 시간순서대로 분류하면 ① 2010. 5. 18. 이전까지의 소위 ‘물밑협상’ 과정에서의 정황들, ② 2010. 5. 18. 피고인 2 측과 피고인 1 측이 만나 후보 단일화 협의를 할 당시의 정황들, ③ 2010. 5. 19. 실제로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진 날의 정황들, ④ 이 사건 선거 이후 피고인 2가 피고인 1로부터 후보 단일화 당시의 합의사항 이행을 요구받는 과정에서의 정황들, ⑤ 그리고 마지막으로 2억 원을 주고받을 당시의 정황들로 분류할 수 있다. 위 ① 내지 ⑤ 중 핵심적인 부분에 대하여 차례로 본다.
(1) 2010. 5. 18. 이전까지의 정황들
검사가 주장하는 이 시점의 정황증거들 중 핵심적인 부분은 ‘선거비용 보전을 위하여 7억 원이 필요하다는 공소외 4의 이야기에 대하여 피고인 2 선거사무소 기획특보인 공소외 12가 공감을 표시하였다.’는 공소외 4의 진술이다.
그러나 위 진술 자체에서 과연 ‘공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공소외 4 본인도 이 법정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그 뿐 아니라 공소외 4는 공소외 12가 위와 같이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모든 것은 합법적인 방법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하였다고 진술한 바 있다. ‘단일화 조건으로 7억 원을 지급한다.’는 것과 ‘합법적인 방법으로 한다.’는 것은 양립불가능한 내용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결과적으로 공소외 4의 진술내용 자체가 처음부터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금전을 지급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단할 만한 의미 있는 정황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여기에다가 i) ‘나는 공감을 표시한 적이 없다.’고 하는 공소외 12의 이 법정에서의 진술, ii) 후보 단일화를 위해 상대방으로부터 사퇴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선거비용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하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즉각 ‘그랬을 리가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일 수는 없지 않느냐는 피고인 2의 해명, iii) 공소외 4가 공소외 12의 대학교 5년 선배라는 둘 사이의 관계 등의 사정을 더해 보면, 결국 공소외 4가 말하는 ‘공감’은 거액의 선거비용을 사용하였다는 자신의 설명을 공소외 12가 경청하고 이해해 주었다는 의미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2) 2010. 5. 18. 당시의 정황들
검사가 주장하는 이 시점의 정황증거들 중 핵심적인 부분은 피고인 1의 다음과 같은 진술 부분, 즉 2010. 5. 18. 저녁 피고인 2 측과 피고인 1 측이 ‘□□□□’라는 카페에서 정식으로 후보 단일화 협의를 하던 중 공소외 12가 직접 피고인 1에게 ‘피고인 2 측에서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7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하였고 그럼에도 피고인 1이 그 조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위 제안을 거절하였다고 하는 진술 부분이다.
그러나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공소외 12로부터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구체적인 시간과 관련하여 ‘피고인 2, 공소외 6, 공소외 14 등이 □□□□를 모두 떠난 뒤 공소외 12만 남아 피고인 1과 약 10분간 짧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7억 원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 때였다.’라고 말하고 있어 그 진술 내용 자체에 의하더라도 당시 현장에 없었던 피고인 2가 그 대화내용을 인지하였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공소외 12는 이 법정에서 오히려 ‘피고인 1이 7억 원 이상의 금전을 요구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인 2 측은 불법적인 금전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 따라서 피고인 1의 앞선 진술과 공소외 12의 진술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인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공소외 12가 7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하였다.’는 피고인 1의 앞서 본 진술은 선뜻 믿기 어렵고, 오히려 공소외 12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i) 우선, 2010. 5. 18. 이전부터 피고인 1 측을 대변하여 피고인 2 측과의 후보 단일화를 추진해 온 피고인 1 선거사무실의 선거대책본부장인 공소외 4마저도 이 법정에서 ‘2010. 5. 18. □□□□에서의 상황은 피고인 1 또는 공소외 13이 피고인 2 측에 금전을 지급할 것을 약속해달라고 요구하고 피고인 2 측은 구두로든 문서로든 그러한 약속을 할 수 없다고 맞서는 상황이었다. 그 후 피고인 2와 공소외 6, 공소외 14 등이 □□□□를 떠난 뒤에는 판이 깨진 다음의 어색한 분위기였으며, 그러한 분위기에서 피고인 1 측에서 계속 금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공소외 12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상황에 불과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묘사가 피고인 1의 진술보다는 공소외 12의 진술에 가깝다 .
ii) 위 □□□□라는 장소는 일반적인 카페로서 내부에 폐쇄된 공간이 없이 모두 볼 수 있는 하나의 연결된 공간에 테이블들과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고 오는 구조이다. 이곳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주변에서 대화소리를 쉽게 엿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외부의 벽면도 대부분 유리로 되어 있어 심지어 외부에서도 내부를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위 장소를 후보 단일화를 위한 협의 장소로 정한 것은 공소외 12와 공소외 4이었는데, 만약 공소외 12와 공소외 4가 처음부터 금전 지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면 위와 같이 공개된 장소를 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양 후보의 공식적인 협상 창구 역할을 한 공소외 12와 공소외 4는 금전 지급 합의를 논의할 생각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소외 12와 공소외 4는 이 법정에서 일치하여 그와 같은 취지로 진술하면서, 그래서 위와 같은 장소를 택한 뒤 양 측 후보와 중재자인 공소외 14를 그 곳으로 불렀는데, 나중에 도착한 피고인 1과 공소외 13이 예정에 없던 금전 지급 이야기를 꺼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만약 당시의 상황이 위와 같았다면, 혼자 남아 피고인 1로부터 금전 지급 이야기를 듣게 된 공소외 12가 그 자리에서 피고인 2 등 선거사무실 관계자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7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iii) 피고인 1은 다음날인 2010. 5. 19. 아침에 공소외 4에게 전화하여 단일화 조건과 관련하여 사실상 백지위임을 하였고, 그날 오후 공소외 4와 공소외 5, 공소외 6이 모인 자리에서 5억 원이라는 금액으로 앞서 본 금전 지급 합의가 이루어졌다 . 당시 공소외 4와 공소외 5, 공소외 6은 위 5억 원마저도 그 중 1억 5, 000만 원은 공소외 4가 우선 개인적으로 대출을 받아 마련한 뒤 나중에 조성되는 자금으로 위 대출금을 변제하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피고인 1이 2010. 5. 18. 저녁에 공소외 12로부터 제안받았다고 하는 ‘7억 원’ 보다 피고인 1 측에 더 불리한 조건으로 금전 지급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만약 앞서 본 피고인 1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2010. 5. 18. 저녁의 상황은 결국 ‘공소외 12가 피고인 2 측을 입장을 대변하여 정식으로 7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하였음에도 피고인 1 측에서 금액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한 상황’이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후 불과 반나절 후에 합의된 내용이 피고인 1에게 오히려 더 불리하게 되어 있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 본문에 기재된 판단 내용과 관련하여 i) ‘증인들의 상세한 증언’ 또는 ‘개별 증거의 상세한 내용’을 원용하거나, ii) 그 증언이나 개별 증거에 대한 증거 판단을 상세히 기재할 필요가 있거나, iii) 본문의 판단과 관련한 부수적인 쟁점에 대하여 논의하는 경우에는 글상자를 사용하였다. 이하 같다.
● 한편, 피고인 1의 위와 같은 진술 내용 이외에도, 2010. 5. 18. 당시의 정황과 관련하여 ‘피고인 2 측에서 금전을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정황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증거로는, 피고인 1이 2010. 10.경 작성하여 둔 ‘단일화 협상 경과와 내용’이라는 제목의 문건(①)과 그에 부합하는 듯한 공소외 13의 검찰 진술(②)이 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①의 증거는 내용이 부정확하여 증거 가치가 높지 않다고 판단되고, 위 ②의 증거는 그 신빙성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 우선 위 ①과 관련하여 본다. 위 문건은 피고인 1이 그 문건 자체에도 기재하여 두었듯이, 피고인 2 측을 압박하여 ‘후보 단일화 당시의 금전 지급 합의 및 정책연대 약속의 이행을 요구하는데 활용할 목적’으로 작성된 문건으로, 후보 단일화 당시 피고인 1을 대변하여 활동하였던 공소외 4마저도 위 문건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있고 피고인 1의 주관적인 생각이 실제로 벌어진 일처럼 기재되어 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 위 문건에는 2010. 5. 18. 낮 △△△식당에서의 상황과 관련하여 “그간 공소외 4가 피고인 2측과 조율한 것을 바탕으로 우리측이 제시한 내용은 ‘여론조사 없이 피고인 1 후보가 사퇴하여 단일화를 하되, (1) ... (중략) ... (2) 피고인 1 후보의 그간 선거운동비용 보전을 위해 피고인 2가 7억을 지원(그 중 2억은 긴급 회계 처리용으로 단일화 타결 1주일 이내에 지원)함과 동시에 피고인 1의 유세차량계약(총 26대, 계약금액 7억 9, 200만 원) 처리를 책임진다’는 것이었음. 피고인 2 측은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수용하겠다고 하면서 유세차량계약 처리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자기 캠프에 가서 협의하겠다고 함.”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당시 △△△식당에 함께 있었던 나머지 모든 사람들, 즉 피고인 2, 공소외 12 뿐 아니라 공소외 4마저도 이 법정에서 ‘△△△식당에서의 식사자리는 후보들 간에 직접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기 때문에, 금전 지급과 관련된 구체적인 이야기나 금액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는 취지로 일치하여 진술하고, 피고인 1 자신도 이 법정에서 ‘당시 7억 원과 관련된 이야기는 피고인 1이 공소외 4에게 한 이야기이고, 다만 그 때 공소외 12가 옆에서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결국 피고인 1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 1은 자신이 공소외 4에게만 한 이야기이고 피고인 2 측에 전달되었는지 여부조차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를 마치 피고인 2 측에서 수용한 것처럼 기재한 셈이다. ㉡ 위 문건에는 2010. 5. 18. 오후 □□□□에서의 상황과 관련하여 “공소외 14 목사의 주도 아래 피고인 1 후보, 피고인 2 후보, 공소외 14 목사가 함께 단일화 증거용 사진을 찍었으며, ‘피고인 1 교수가 선거후유증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책임지겠다, 피고인 1 교수에게 서울시교육청 정책자문기구의 위원장을 맡기겠다’는 피고인 2 후보의 약속 내용을 핸드폰에 녹음함”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피고인 1 스스로도 이 법정에서 ‘당시 사진을 찍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증거용이라는 말은 없었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분위기 전환용이었을 수도 있다.’, ‘녹음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실제로 녹음을 하는 것을 보거나 확인한 적은 없다.’고 인정하였다. 결국 위 문건의 이 부분 단정적인 표현들은 사실은 피고인 1의 주관적인 판단과 추측에 불과한 것이었던 셈이다. ㉢ 위 문건에는 이어서 “그러나 그 후 피고인 2의 회계책임자인 공소외 12가 따로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여 옆 자리에서 공소외 4와 함께 만났더니 ‘피고인 1 후보의 유세차량 계약 건은 피고인 1측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조건으로 선거운동비 보전액을 총 7억 원으로 하되 사정기관의 자금 흐름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연말까지 지급하고, 피고인 1 후보의 사퇴 후 긴급 회계 처리용 지원금 2억도 선거 이후인 6월말까지 마련하여 주겠다’고 제안하였음”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공소외 4, 공소외 12는 모두 이 법정에서 당시 공소외 12가 위와 같이 제안한 적이 전혀 없었다고 진술하고, 피고인 1 스스로도 이 법정에서 ‘문건에 기재한 상황은 피고인 2가 자리를 떠난 이후에 남아 있는 공소외 12와 10분 정도 대화한 것에 불과하고, 당시 공소외 12가 7억 원을 연말까지 주겠다고 하였을 뿐이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피고인 1 자신의 진술 내용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위 문건 기재 내용은 매우 과장되어 있다. 위 ㉠ 내지 ㉢과 같은 사정에다가, ㉣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공소외 6의 연구실을 찾아가 그에게 위 문건을 제시하면서 후보 단일화 당시의 금전 지급 합의를 아무도 이행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나 공소외 6은 문건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화를 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공소외 12도 이 법정에서 ‘공소외 13이 위 문건을 제시하며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였으나 내용이 황당하여 면박을 주었다.’고 진술하는 등 실제로 위 문건을 접한 사람들의 첫 반응이 ‘증거의 존재로 인한 위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내용에 대한 항의’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는 점을 더해보면, 위 문건이 과장되고 부정확하게 작성된 서류라는 공소외 4의 설명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 다음으로 위 ②에 관하여 본다. 공소외 13은 검찰에서 위 ① 문건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며 2010. 5. 18. 당시 공소외 13이 그 내용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i) 진술의 신빙성 측면에서, 공소외 13은 이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내용을 마치 경험한 것처럼 상세히 설명하고, 검사와 변호인들, 재판장의 동일한 질문에 대하여 질문할 때마다 다르게 답변하거나, 한번 진술한 내용을 즉시 번복하기도 하는 등 임기응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진술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증언에 임하는 위와 같은 태도와 모습, 진술의 뉘앙스 등을 보면, 공소외 13의 검찰 및 이 법정에서의 진술은 도저히 그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 또, ii) 진술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공소외 13은 이 법정에서 ‘□□□□에 도착하여 자신이 금전 지급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한 각서를 작성하자고 주장하였을 때 공소외 12가 금전 지급과 관련한 합의는 없었고 각서를 작성할 수도 없다고 거절하며 자신의 퇴장을 요구하여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고, 그 후 피고인 2가 도착하였다가 떠났으며, 피고인 2가 떠난 이후에 피고인 1과 공소외 12가 논의할 때에는 자신은 떨어져서 화장실 근처에 있거나 건물 밖에 있었기 때문에 내용을 듣지 못하였다.’, ‘피고인 2가 도착하였다가 떠날 때까지는 공소외 14가 양측을 한 테이블에 앉게 한 뒤 협의를 진행시켰는데 당시 공소외 14는 금전 지급과 관련된 내용을 전혀 언급한 바 없다.’는 내용을 결과적으로 모두 인정하였는바, (주9) 이는 사실상 자신의 검찰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 특히 공소외 13 법정 진술 태도와 관련한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공소외 13은 이 법정에서, 공소외 13이 □□□□에 도착한 경위 및 당시 도착한 사람들의 순서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내가(공소외 13가) 피고인 1을 차로 모시고 갔고, 피고인 1을 먼저 내려주고 나는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들어갔다. 그래서 피고인 1이 나보다 3~4분 먼저 들어갔다.’고 하면서 마치 자신이 당시의 상황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상세히 설명하였다.(주10) 그러나 피고인 1의 변호인이 반대신문 과정에서 ‘피고인 1은 서초구 의회에서 □□□□로 갔고, 공소외 13은 후보 선거사무실에 있다가 따로 왔는데 어떻게 □□□□에 같이 갔다는 것인가.’라는 취지로 묻자 별다른 해명 없이 ‘피고인 1 교수의 기억이 확실하면 그것이 맞을 것입니다.’라고 진술하여 앞선 진술을 바로 번복하였다.(주11) ㉡ 공소외 13은 검찰에서 “공소외 14 목사가 2010. 5. 18. 사당동 □□□□ 카페에서 단일화 협상과정을 녹음한 녹음파일과 단일화 증거용으로 찍은 사진파일을 피고인 1의 구글메일로 보내주기로 하였고, 실제로 피고인 1은 이 파일을 이메일로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검사가 재차 “확실하냐”고 묻자 “제가 2010. 6.경 교육감 선거가 끝날 때까지 피고인 1 교수 메일을 관리했었고, 당시 피고인 1 교수의 다음 메일인지 구글메일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간 그 파일이 보내져 온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피고인 1교수는 원래 다음 메일을 주로 사용하는데 누군가 다음 메일은 보안성이 떨어진다고 하여 구글메일도 사용하고 있어 어느 메일로 보내졌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까지 진술하였다.(주12) 그런데 공소외 13은 이 법정에서는 그와 달리, ‘위 진술내용이 사실이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메일을 본 적 없다.’, ‘공소외 4가 메일로 받았다고 했는데 피고인 1교수의 메일로 잘못 판단한 것 같다.’라고 진술하였다.(주13) 위와 같은 법정 진술내용은 ‘자신이 관리하는 피고인 1의 계정을 통해 메일을 직접 확인한 사실이 있다.’라는 검찰 진술 취지와 전혀 달라, 단순히 착오로 혼동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주14) ㉢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후보 단일화 협상은 공소외 4를 통해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공소외 13에게는 그 협상 조건 등에 대하여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다.’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데, 공소외 13은 위 진술과 달리 2010. 5. 18. 이전부터 마치 자신이 협상 조건을 잘 알고 있었고, 나아가 2010. 5. 18. 당시 두 후보들 간에 제시된 조건이 어떻게 달랐는지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진술하였다. 그러나 공소외 13은 위 진술에 대하여 ‘피고인 1이 언제 위와 같은 협상 조건을 알려주었느냐.’라는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지자 처음에는 ‘□□□□로 이동하기 몇 시간 전인 2010. 5. 18. 오후 1시~2시경 전화로 들었다.’고 하다가, 그 다음에는 ‘2010. 5. 17. 또는 그 이전에 들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에서 협상이 결렬된 이후 선거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구체적인 내용을 들었다고 답변하기도 하는 등 일관성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주15) 또, 공소외 13은 이 법정에서 검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피고인 1 측은 □□□□에서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일단 7억 원을 요구하고, 여기에 덧붙여 피고인 1 측의 유세차량을 피고인 2 측에서 승계할 것을 요구하면서 만약 승계가 되지 않을 경우 5, 000만 원을 추가하여 지급하여 달라고 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주16) 이는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당시의 전체적인 상황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피고인 1은 □□□□에서의 협상 당시, 유세차량 업체를 소개해준 지인의 말을 듣고 ‘유세차량을 사용하지 아니할 경우에도 업체에 계약금액 전액인 7억 9, 6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선거비용 중 유세차량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였으며, 피고인 1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공소외 4에게도 차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후보 단일화 합의를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고, □□□□에서도 공소외 12가 ‘유세차량을 승계하기 어렵다.’고 하여 결국 자신이 협상 결렬을 선언하였다는 것이다.(주17) 피고인 1 측에서 ‘유세차량 미승계로 인한 지급금’을 5, 000만 원 밖에 요구하지 아니하였다는 공소외 13의 진술은 위와 같은 당시의 전체적인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 실제로 이 사건 관련자들 중에서 공소외 13 이외에 ‘5, 000만 원’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피고인 1은 적극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주18) ㉣ 공소외 13은 검찰에서, “피고인 1 교수가, 자신이 직접 후보단일화에 관여한 관련자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하면서, 저에게 ‘그 사람들을 만나 진실을 얘기하는지 한 번 대화를 해보고 그 대화내용을 녹음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명확히 진술하였다.(주19) 그러나 공소외 13은 이 법정에서, 이와 관련한 피고인 1의 변호인의 질문이 이어지자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야기도 다르고 시간도 다릅니다. 제가 메모를 하면서 적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답답해서 피고인 1 교수에게 제가 녹음해서 들어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먼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녹음을 하자고 했고 피고인 1이 동의한 것입니다.”라고 진술하며 검찰에서의 진술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다.(주20) ㉤ 공소외 13은 또 검찰에서는, 위와 같은 경위로 자신이 몰래 녹음한 녹음파일과 관련하여 “당시 연구실 조교에게 ●●●●대학교 앞 문구점에서 USB 하나를 사오라고 해서 그 안에 녹음 파일을 넣어 피고인 1 교수에게 주었고, 피고인 1 교수님이 항상 연구실에 있는 것은 아니어서 피고인 1 교수님이 USB를 가지고 다니면서 집에 있는 컴퓨터로 녹음내용을 듣거나 아니면 연구실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 놓고 듣거나 한 것으로 압니다.”라고 상세히 설명한 바 있다.(주21) 그러나 공소외 13은 이 법정에서 이에 관하여 피고인 1의 변호인이 ‘피고인 1은 USB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진술이냐.’는 취지로 질문하자 그제서야 ‘자신이 피고인 1에게 USB를 준 사실 자체가 없고 사실은 다른 친구를 통해 녹음 파일을 피고인 1에게 전하였는데 그 친구가 파일을 CD로 주었는지 USB로 주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피고인 1의 집 컴퓨터나 연구실 바탕화면 등과 관련한 이야기는 추측일 뿐이다.’라고 인정하면서 앞선 검찰 진술을 완전히 번복하였다.(주22) 특히 공소외 13은 검찰에서 자신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 USB를 사온 경위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는데, 공소외 13의 법정 진술에 의하면 이러한 구체적인 언급마저 모두 허위로 꾸며내었다는 것이 된다. ㉥ 공소외 13은 검찰에서, “실제로 피고인 1 교수가 직접 기자회견문을 어느 정도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진술하면서 ‘당시에는 피고인 1 교수가 피고인 2 측 사람들로부터 지나치게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피고인 1 교수가 자신이 어느 정도 피해를 입더라도 피고인 2 교육감이 약속이행을 하지 않고 자신을 계속 무시한다면 단일화 합의사항을 폭로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라고 그 경위를 상세히 설명하였다.(주23) 그러나 이 법정에서 이와 관련한 피고인 1의 변호인이 질문이 시작되자 ‘사실은 당시 기자회견문의 초안을 만든 것은 공소외 13 자신이고, 위 사실을 피고인 1에게는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였다.(주24) ㉦ 공소외 13은 이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 1의 변호인의 거듭된 질문에 ‘저는(공소외 13은) 공소외 12의 요구에 의해 교과교실제 등 이권사업 3~4개를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나, (주25) 실제로 공소외 12와 공소외 13 사이의 대화내용을 녹음한 녹음파일에 의하면, 오히려 피고인 1의 선거비용 보전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공소외 12에게 공소외 13이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하면서 위 이권사업을 제안한 사실이 확인된다.(주26) 공소외 13의 이러한 진술 태도는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진술하지 아니하고 자신에 대한 유·불리를 고려하여 사실을 왜곡하며 진술하는 증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위 ㉠ ~ ㉦의 예에 비추어 보면, 공소외 13의 검찰 및 이 법정에서의 각 진술은 그 중 사실에 부합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전혀 구분되지 아니하여, 결국 전체적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인정하였는바, 설명하였다.
번복하였다.
진술하였다.
진술하였다.
넘어선다.
있다.
진술하였으나, 것이다.
있다.
진술하였다.
인정하였다.
있다.
번복하였다.
설명하였다.
인정하였다.
진술하였으나, 확인된다.
(3) 2010. 5. 19. 당시의 정황들
이 시점의 정황들 중 검사가 지적하는 핵심적인 부분은, ‘피고인 2가 그 전날까지 피고인 1이 후보 단일화 조건으로 7억 원 이상의 금전 지급을 요구한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갑자기 금전 지급 조건 없이 단일화가 된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 경위에 대한 피고인 2의 해명은 다음과 같다.
‘그 전날인 2010. 5. 18. 밤에 피고인 1 측에서 10억 원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공소외 12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들었는데, 그 때 공소외 12가 피고인 1과의 대화 과정에서 피고인 1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는 정보를 얻었다고 하면서, 기다리면 백기투항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정말로 다음날인 2010. 5. 19. 오전에 공소외 16으로부터 10억 원 보다 훨씬 낮은 금액인 3억 5, 000만 원에 합의하면 어떠냐는 취지의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것을 거절하였더니 그날 오후에 공소외 5가 전화를 하여 금전 지급 조건 없이 단일화가 되었다고 하였다. 피고인 1이 돈을 포기하고 명분을 선택하여 결단을 내렸다는 생각에 감격하여 단일화 기자회견 직전에 울먹이며 그를 아우로 맞이하겠다는 말을 하고, 피고인 1이 선거비용으로 인한 채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그 기자회견장에 있던 시민사회단체 원로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말도 하였다. 돈을 조건으로 단일화가 된 것을 알았다면 감격할 이유도 없고, 내가 돈을 줘서 해결하기로 했는데 피고인 1의 재무상태를 염려할 이유도 없다. 또, 공소외 12가 도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공소외 12에게 전화를 걸어 폴리프로페셔널이라고 치하하고,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같이 구 화양극장 뒤편 김치찌개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역시 치하해 주었다.’
위와 같은 피고인 2의 해명은 그 내용 자체만으로는 납득할 만한 부분이 있으므로, 결국 문제는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로 귀결된다.
그런데 우선 피고인 2의 진술 내용부터가 매우 상세할 뿐 아니라, 이와 관련하여는 i) 공소외 6이 이 법정에서 스스로 ‘내가 공소외 5에게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피고인 2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고 인정하고 있고, ii) 공소외 5도 검찰 및 이 법정에서 일관되게 ‘피고인 2에게 짐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피고인 2는 무조건 단일화가 된 것으로 이해하고 좋아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ii) 공소외 12와 공소외 16, 공소외 14가 모두 피고인 2의 진술 내용과 동일하게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공소외 5, 공소외 12, 공소외 16, 공소외 14의 위와 같은 진술 내용들이 모두 허위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피고인 2의 위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려운 구도인데, 검사가 제출하는 모든 증거들을 살펴보더라도 위 증인들의 진술이 허위라고 의심할 만한 아무런 정황을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래 ‘라.항’의 반대사실 및 ‘제4. 나. (1)항’이 인정사실들에 비추어 보면, 위 증인들의 진술 모두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결국, 이 부분 정황도 ‘피고인 2의 합의 승인 사실’의 입증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4) 피고인 2가 피고인 1로부터 합의 이행을 요구받는 과정
이 시점의 정황들 중 피고인 2의 합의 승인 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핵심적인 부분은 피고인 1이 2010. 8. 19.경 또는 20.경 피고인 2의 교육감 집무실로 직접 찾아가 ‘약속을 이행하라. 참모들에게 약속 내용을 확인해라.’는 취지로 말하였음에도 피고인 2가 참모들을 불러 이를 확인하지 않은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i) 이에 대하여 피고인 2는 ‘피고인 1이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였는지 정확한 기억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피고인 1이 밑도 끝도 없이 약속을 이행하라고 하기에 처음에는 듣고 무슨 약속이냐며 응수하다가 계속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내길래 나중에는 흘려 들었다.’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고, ii) 피고인 1 스스로도 이 법정에서, 당시 명시적으로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말하지는 아니하였고 주로 정책연대와 인사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말미에 잠깐 ‘경제적 어려움이 없도록 돕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추상적으로만 언급한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피고인 2의 위 설명에 전체적으로 부합하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며, iii) 경험칙상으로는, 오히려 피고인 2가 당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피고인 1의 추상적인 ‘약속을 이행하라.’는 언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응수하거나, 항의하는 피고인 1을 달래 주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점, iv) 당시 교육감 집무실에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있던 공소외 17도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기억도 없고 피고인 1이 유난히 격앙되어 있었던 것만 기억난다는 취지로 말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 정황 역시 ‘피고인 2의 합의 승인 사실’의 입증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5) 2억 원을 주고받을 당시의 정황
검사가 지적하는 이 시점의 정황들 중 핵심적인 부분은, ① 피고인 2가 현금으로 2억 원을 마련하는 등 금전을 은밀하게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② 피고인 3이 피고인 1의 동생인 공소외 9에게 현금을 건넬 때 둘 사이에 차용증과 역차용증을 작성하는 등 사후에 이러한 일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에 대비하여 금전의 성격을 은폐하기 위한 자료를 만들어 둔 정황들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 2는 자신이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면서 그 이유에 대하여 ‘피고인 1이 2억 원을 후보 단일화 당시의 합의에 따른 이행금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피고인 1을 통해 소문이 나서 공소외 4와 공소외 6, 공소외 5 사이에 있었던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피하려고 처음부터 피고인 2 자신이 현금으로 주고받자고 하였다.’라고 상세히 진술하고, 피고인 3은 위 차용증과 관련하여 ‘피고인 3의 입장에서는 남의 돈을 전달해 주는 상황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문서를 받아둘 필요가 있었는데, 공소외 9가 차용증으로 작성하자고 한 뒤 다시 역차용증을 작성해 두자고 하여 그대로 응한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
나아가 피고인 2의 변호인들은 ‘돈을 은밀하게 주고받아야 하는 이유는 검사가 주장하는 사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직 교육감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던 피고인 2의 특수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일단 금전을 은밀하게 전달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현금을 이용하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으며, 차용증과 역차용증 역시 은밀하게 일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나중에 금전의 반환을 요구받을 것을 우려한 금전 수수자 측의 우려에 따라 작성된 것이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위와 같은 위 피고인들의 반박 내용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에 관한 검사와 피고인들의 주장 대립은 결국 ‘은밀히 금전을 주고받을 필요성의 존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은밀히 금전을 주고받은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은밀히 금전을 주고받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2010. 5. 19. 당시 피고인 2가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알고 승인하였다.’는 검사의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피고인 2의 반박 내용 중 어느 부분이 더 신빙성이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되고, 이 부분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따라서 이는 다시 ‘피고인 2의 반박 내용이 허위라는 점이 검사가 제출한 다른 증거들에 의하여 입증되는가’의 문제로 환원되고, 그러한 측면에서 앞서 본 금전 전달 과정에서의 정황들은 ‘피고인 2의 합의 승인 사실’을 입증하는데 있어서도 독립적으로 특별한 증거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이지는 아니한다.
나아가 이 사건에서는 위 피고인 2의 반박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입증할 다른 충분한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래 ‘라.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 반박 내용에 부합하는 정황들이 존재한다.
라. 검사의 주장과 양립할 수 없는 반대사실들의 존재
(1) 이 사건 선거가 끝난 이후 피고인 2와 공소외 6의 행동
(가) 이 사건의 전체적인 전개 과정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이 사건의 전체적인 전개 과정을 ‘금전’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단순화하면 결국, ‘후보 단일화(①) → 피고인 2의 당선 → 피고인 1 측의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이행 요구(②) → 피고인 2 측의 방기 또는 거절(③) → 피고인 1 측의 압박(④) → 피고인 3과 공소외 7의 개입(⑤) → 2억 원의 제공·수수(⑥)’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위 ②부터 ⑤에 이르는 과정에서 피고인 2와 공소외 6이 취한 다음과 같은 행동들은, ‘피고인 2가 이 사건 선거 당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알고 승인하였다.’는 가정 하에서는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나) 피고인 2와 공소외 6의 행동
위 ②부터 ⑤에 이르는 과정에서 피고인 2와 공소외 6이 취한 행동들을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 피고인 1 선거사무실의 정책홍보특보인 공소외 13은 피고인 2의 당선 이후 교육감직 인수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당선인 비서실장인 공소외 7에게 이른바 ‘이권사업’을 제안하였다는 이유로 피고인 2가 교육감으로 취임한 이후에 서울시교육청의 직원으로 채용되지 않았다. 그 후 피고인 1이 공소외 13의 인사 문제를 피고인 2에게 직접 언급하였음에도 피고인 2는 공소외 7과 공소외 17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토대로 ‘이권사업으로 인한 공직부패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공소외 13을 끝까지 채용하지 않았고, 피고인 1에게 명시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 후 공소외 13은 2010. 8.경 여의도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공소외 12를 만난 자리에서 공소외 12에게 ‘피고인 1의 선거비용 지출로 인한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교과교실제’라고 불리우는 제도와 관련한 이권사업을 제안하였다. 공소외 13은 2010. 10.경 또는 2010. 11.경에는 공소외 12에게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면서 피고인 1이 작성한 ‘단일화 협상 경과와 내용’이라는 문건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공소외 12는 위와 같은 사실들을 피고인 2에게 전혀 알리지 아니하였고, 피고인 2도 피고인 1의 행동에 대한 대응책을 공소외 12와 논의한 바가 없다.
㉡ 피고인 1은 2010. 7.경에 한차례, 그리고 2010. 8. 19.경 또는 20.경에 한차례 피고인 2의 교육감 집무실을 직접 찾아가 ‘후보 단일화 당시의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항의하였고, 그 과정에서 ‘내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라는 말도 하였다. 그런데 피고인 2는 피고인 1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피고인 1에 대하여 ‘무슨 약속이냐’라고 하며 맞섰고, 결국 둘 사이에 고성이 오가게 되면서 교육감 비서실 직원까지 그 상황을 인지하고 집무실로 들어올 정도였다.
㉢ 피고인 2의 행동에 분개한 피고인 1은 2010. 9.경 공소외 13, 공소외 4를 만나 ‘피고인 2가 발뺌을 하는데 기자회견을 하고 피고인 2를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겠다.’는 말을 하였고, 그즈음 피고인 1과 공소외 4, 공소외 13이 시민사회단체 원로인 공소외 11을 만난 자리에서 피고인 2를 압박할 방법이 논의되기도 하였다. 피고인 1은 2010. 10.경에 이르러 위 ㉠에서 본 ‘단일화 협상 경과와 내용’이라는 문건을 직접 작성하기도 하였다.
㉣ 피고인 1은 그즈음 공소외 6을 찾아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언급하면서 위 ‘단일화 협상 경과와 내용’이라는 문건을 제시하고 항의하였으나, 공소외 6 역시 피고인 2와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주선하는 이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 결국 공소외 6의 주선으로 2010. 10. 22. 피고인 1과 피고인 2, 공소외 6이 함께 만난 식사 자리에서 피고인 1과 피고인 2 사이에 다시 한 번 언쟁이 생겨 피고인 1이 언성을 높여 식당 밖에 있던 공소외 7이 식당으로 들어오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 피고인 1은 2010. 11. 17.경 및 2010. 11. 19.경 피고인 2의 부탁을 받고 찾아 온 피고인 3과 공소외 7에게도 위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주장하고 피고인 2를 비난하면서 ‘터트리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기도 하였다.
(다) 검사 주장의 논리 및 경험칙 상의 문제점
1) 피고인 2 관련 부분
위 ㉠ 내지 ㉤의 과정에서 피고인 2는, 공소외 13이 제안하는 이권사업을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자신의 재산을 직접 출연하지 아니하고 피고인 1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보장해 주거나, 또는 피고인 1과 만난 자리에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언급하면서 금전 지급 시기를 조절하거나 구두 약속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피고인 1을 달래거나 진정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0. 7.경부터 2010. 11. 17.경까지 4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피고인 1과 직접 언쟁까지 해 가면서 대립한 끝에 피고인 1이 기자회견 또는 선거관리위원회 고발을 검토하는 상황까지 초래하였다.
검사의 주장과 같이 피고인 2가 이 사건 선거 당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인지하여 알고 있었다면 위와 같이 피고인 1과 대립하여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 2 본인이 위 합의를 승인한 사실’은 피고인 1이나 공소외 4가 직접 확인한 바 없으므로 피고인 1의 표현처럼 이른바 ‘발뺌’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회계책임자 공소외 5가 위 합의에 관여된 사실’은 피고인 1과 공소외 4가 그 합의가 이루어진 시간과 장소까지 모두 알고 있어 이를 부정하기 어렵고, 위와 같이 회계책임자가 관여된 사실만으로도 피고인 2의 당선이 무효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검사의 주장대로라면, 피고인 2는 ‘그의 교육감 당선이 무효로 될 수 있는 범죄사실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과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대립되는 상대방’인 피고인 1을 극도로 자극하는 행동을 수차례 반복하였다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가설은 경험칙 상 수긍하기 어렵다.
또, 검사의 주장은 위와 같이 경험칙 상 납득하기 어렵다는 문제점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논리적인 모순점이 있다.
만약 피고인 2가 이 사건 선거 당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보고받아 승인한 후 의도적으로 위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고 가정한다면, 그렇게 행동한 동기는 i) 피고인 1에게 약속한 금전을 지급하지 않을 의도였거나, 또는 ii) 처음부터 일련의 상황 전개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피고인 1을 경제적으로 궁박한 처지에 몰아넣은 뒤 마지막에 협상을 통해 합의금액을 깎을 의도였던 것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위 i)의 가설은 피고인 2가 2010. 11. 17.경 이후부터 피고인 3과 공소외 7을 보내 피고인 1과의 화해를 부탁하고 결국, 어떠한 명목이든 간에, 스스로의 재산을 동원하고 주변에서 거액의 금전을 빌려가면서까지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교부한 정황과 모순된다.
또, 위 ii)의 가설과 관련하여는, ‘상황 전개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예측하였다.’는 가정과 ‘상대방이 기자회견과 선거관리위원회 고발을 논의하는 상황에 이르도록 방치하였다.’는 정황이 성질상 모순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 더구나 이 사건과 같이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대립하는 두 세력과 그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는 구도 하에서 수개월에 걸쳐 진행된 과정을 사전에 예측하고 나아가 거기에 맞는 하나의 일관된 가장된 입장을 정립하여 행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위 ii)의 가설은 논리와 경험칙에 근거하여 ‘의심’을 ‘입증’하기 위해 추론한 가설이라기보다는, 거꾸로 ‘의심’이 사실이라는 것을 먼저 전제하고 형식적으로 가능한 설명을 도출해낸 가설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2) 공소외 6 관련 부분
공소외 6의 관점에서 이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공소외 6이 2010. 5. 19. 공소외 4와 합의하면서 피고인 2에게 금전 지급 합의를 직접 알려준 사실이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피고인 2가 위 합의를 승인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 공소외 6으로서는 피고인 1이 공소외 6의 연구실을 찾아와 문건까지 제시하며 항의하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고인 2에게 즉시 알리고 피고인 1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공소외 6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뒤의 ‘제4. 나. (4)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 2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피고인 1의 요구로 인하여 만들어진 2010. 10. 22.자 식사 자리에 이르러서야, 즉 공소외 6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에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수밖에 없게 된 마지막 시점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피고인 2에게 그 자리에 15분 정도 일찍 올 것을 요청한 뒤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과 관련된 내용을 고백하였다 .
이러한 공소외 6의 행동은 공소외 6 자신이 이 법정에서 진술하였듯이, 피고인 2 몰래 위법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에 관여한 데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2) 피고인 3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 경위 및 시기
피고인 3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 경위 및 시기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검사의 주장을 전제로 하여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피고인 2가 피고인 1과 관련된 문제로 피고인 3을 처음 만난 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피고인 2와 피고인 3 사이의 통화내역 등에 의하면 그 시점은 아무리 늦어도 2010. 10. 20.경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후 피고인 2의 부탁을 받은 피고인 3이 피고인 1을 처음 만난 날은 2010. 11. 17.경이다. 결국 ‘피고인 2가 피고인 1과 관련된 문제로 피고인 3을 처음 만난 시점’부터 ‘피고인 3이 피고인 2의 부탁으로 피고인 1을 찾아가 만난 시점’까지 최소한 1달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 셈이다.
그런데 만약 피고인 2가 이 사건 선거 당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승인하였고 그 경위를 잘 알고 있었다면, ‘이 사건 선거 이후 피고인 2가 피고인 1의 요구에 대하여 취해 온 태도’로 인하여 피고인 1이 불만을 가지고 이를 폭로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정을 인지하는 즉시 이를 무마하기 위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에 개입된 공소외 5는 피고인 2 선거사무실의 회계책임자였기 때문에 2010. 10. 20.경의 시점에라도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의한 조사가 시작된다면 피고인 2의 교육감 당선 자체가 무효로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피고인 2는 피고인 1을 바로 접촉한 것이 아니라 공소외 7, 피고인 3, 공소외 5 등을 순차적으로 만나면서 시간을 소요하였고, 이 문제에 대한 별다른 조치 없이 2010. 10. 24.경부터 2010. 11. 1.경까지 스웨덴·핀란드 출장을 다녀오기도 하였는바, 이렇게 시간이 지체된 과정은 검사의 주장을 전제로 하여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반면 이와 관련한 피고인 2와 피고인 3, 공소외 6, 공소외 5, 공소외 7 등의 관련자들의 진술 내용을 종합하면, ‘2010. 10. 20.경부터 2010. 11. 17.경까지 사이의 상황은 피고인 2가 공소외 5, 공소외 6을 만나가면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경위를 파악하고, 피고인 3과 공소외 7에게 이 사건의 경위를 알려주며 도움을 청하는 과정에서 소요된 시간’이었던 것으로 이해되는데, 위 진술들은 그 내용이 자연스럽고 별다른 모순점이 발견되지 아니한다.
(3) 반대 정황에 대한 관련자들의 상세한 증언
위 (1), (2)와 같은 논리적인 근거 이외에, 사실인정과 관련한 피고인들 및 증인들 진술의 신빙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다음과 같은 정황들, 즉 i) ‘2010. 5. 19. 전후의 시점’에 피고인 2의 입장에서는 금전과 관련한 조건 없이 단일화가 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정황들, 그리고 ii) ‘2010. 10. 중순경 전후의 시점’에 피고인 2가 위 합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정황들에 대한 관련자들의 증언 내용이 매우 상세하고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서로 간에 주요 부분에 있어 모순되는 점이 없고 대체로 부합하고 있다. 이들의 진술은 위와 같이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허위라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진술에 임하는 피고인들과 증인들의 모습, 태도, 진술의 뉘앙스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이와 관련된 몇가지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우선 2010. 5. 18. □□□□에서의 상황, 즉 먼저 도착한 피고인 1 측이 선거비용 보전을 요구하고 그 후 피고인 2가 도착할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12는 이 법정에서 “바로 (□□□□) 입구로 나갔습니다. 후보차가 회색 카니발이었는데 통유리라서 그 차가 도착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때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피고인 1 측에서 돈을 요구한다는 말을 하자 피고인 2가) 굉장히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얼굴이 별로 안 좋아졌습니다. 피고인 2가 ‘공소외 14 목사가 왔냐.’고 물어봐서 ‘공소외 14 목사가 왔다.’고 했더니 ‘공소외 14 목사는 만나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라고 진술하였고, 당시 □□□□에 후보 단일화 협상을 중재하러 왔던 공소외 14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1 측에서 돈 이야기를 하길래 놀랐다. 그래서 그곳에 있다가 피고인 2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문 앞에 나가 피고인 2에게 상대방이 돈 얘기를 한다고 말해주었더니 피고인 2가 화를 내면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공소외 14가) 그래도 인사라도 하고 가라고 하면서 손을 잡아 끌어 들어오게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
㉡ 같은 날 피고인 2와 공소외 6, 공소외 14가 □□□□를 떠난 이후 피고인 1과 공소외 4, 공소외 12가 남아 10분 정도 추가로 대화하였음은 앞서 본 바이다. 당시의 상황과 관련하여 공소외 12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2에게 전화를 하여 피고인 1이 계속하여 7억 원+알파의 지급을 요구하는데 협상을 계속해야 하냐는 취지로 보고하였는데, 피고인 2는 선대본부장인 공소외 15, 공소외 6이 섭섭하지 않게 둘의 의견을 들어 마무리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공소외 15, 공소외 6에게 전화를 했는데 둘 다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특히 공소외 15는 크게 화를 내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피고인 2도 이 법정에서 공소외 12와의 전화 통화에 대하여 위와 동일하게 진술하였으며,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15는 이 법정에서, “(당시에) 제가 ‘호랑이 아가리에 대갈통을 밀어 넣는 짓이나 다름없다. 운동권을 통째로 말아먹는 짓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택도 없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받고 나서 선대위 사무실에 있는 몇 사람과 상의를 했습니다. 제가 ‘이런 전화가 왔는데 내 생각은 이렇다’고 이야기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동의해서 제가 공소외 12에게도 똑같은 표현을 했습니다.”라고 진술하였다 .
㉢ 2010. 5. 19. 아침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친구인 공소외 31의 누나이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공소외 16에게 전화를 하여 선거비용 문제 및 단일화 문제에 대하여 상의하였고 그 때 공소외 16이 실제로 사용한 선거비용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서 그래서 제가(피고인 1이) 공소외 16에게 3~4억 원 정도 더 쓴 것 같고, 5억 원까지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좀 쓴 것 같다고 말하였다.’고 진술하였고, 공소외 16은 이 법정에서 ‘당시 피고인 1로부터 전화를 받고 실제로 사용한 선거비용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피고인 1이 3억 원 정도라고 하였다. 그 후 피고인 2에게 전화하여 피고인 1이 실제로 사용한 선거비용만 보전해주면 어떻겠냐고 말하였다는데 피고인 2가 이동 중이어서 길게 전화를 못 받는다고 하면서 돈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여 결국 거절당하였다.’고 진술하였으며,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당시 공소외 16이 3억 5, 000만 원을 주고 단일화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여 거절하였다. 속으로는 바로 어제만 해도 10억 원이라더니 금액이 아주 낮아졌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였다 .
㉣ 피고인 2는 앞서 ‘제3. 다. (3)항’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법정에서, ‘그 전날인 2010. 5. 18. 밤에 피고인 1 측에서 10억 원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공소외 12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들었는데, 그 때 공소외 12가 피고인 1과의 대화 과정에서 피고인 1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는 정보를 얻었다고 하면서, 기다리면 백기투항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정말로 다음날인 2010. 5. 19. 오전에 공소외 16으로부터 10억 원 보다 훨씬 낮은 금액인 3억 5, 000만 원에 합의하면 어떠냐는 취지의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것을 거절하였더니 그날 오후에 공소외 5가 전화를 하여 금전 지급 조건 없이 단일화가 되었다고 하였다. 피고인 1이 돈을 포기하고 명분을 선택하여 결단을 내렸다는 생각에 감격하여 단일화 기자회견 직전에 울먹이며 그를 아우로 맞이하겠다는 말을 하고, 피고인 1이 선거비용으로 인한 채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그 기자회견장에 있던 시민사회단체 원로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말도 하였다. 돈을 조건으로 단일화가 된 것을 알았다면 감격할 이유도 없고, 내가 돈을 줘서 해결하기로 했는데 피고인 1의 재무상태를 염려할 이유도 없다. 또, 공소외 12가 도사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공소외 12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은 폴리프로페셔널이다라고 치하하고,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같이 구 화양극장 뒤편 김치찌개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역시 치하해 주었다.’라고 진술하고, 공소외 12 역시 이 법정에서 동일한 내용으로 진술하면서 특히 2010. 5. 19. 밤의 상황에 대하여는 “저녁에 저와 선배 1명, 후배 1명과 서대문 캠프 바로 맞은편에 있는 김치찌개 집에서 김치찌개를 저녁으로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피고인 2가 서대문 캠프에 들어오면서 저에게 전화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피고인 2가 ‘어디에 있느냐’고 해서 ‘김치찌개 집에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거기로 왔습니다. 피고인 2가 들어오면서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폴리프로페셔널이다.’라는 찬사를 하면서 껴안아 주었습니다.”라고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
㉤ 피고인 2가 2010. 10. 8.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 휴정 시간에 국회의원으로부터 언질을 받고 후보 단일화 당시에 벌어진 일에 대하여 조사하기에 이른 과정, 위 조사를 통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알아내고 공소외 5와 공소외 6을 만나 사실을 확인하고 화를 낸 과정, 그 후 피고인 1과의 관계 등 전체적인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3, 공소외 7과 논의하는 과정 등에 대한 피고인 2, 피고인 3, 공소외 17, 공소외 7, 공소외 5, 공소외 6 등의 진술 내용들도 모두 아래 ‘제4. 나. (4), (5)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할 뿐 아니라 그 진술을 탄핵하기 위한 검사의 신문에 대하여도 동일한 진술 태도로 즉각 상세한 답변을 하면서 증언에 임한 바 있어, 도저히 꾸며낸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
마. 피고인 2가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선거 당시부터 알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소결론
이상에서 논의한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검사가 제출한 정황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장에 기재된 ‘피고인 2가 후보 단일화 당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보고받아 알고 승인하였다.’는 부분을 인정하기에 부족할 뿐 아니라, 오히려 ‘피고인 2는 2010. 5. 19. 당시 위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알지 못하였고, 금전과 관련된 조건 없이 단일화가 된 것으로 계속 알고 있다가, 이 사건 선거가 끝나고 수개월이 지난 2010. 10. 중순경 뒤늦게 그 합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이 이 사건의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하에서는 위에서 논의된 부분을 포함하여, 이 사건의 전반적인 사실관계에 관하여 살펴본다.
4.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이 사건의 사실관계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다양한 증거들, 특히 i) 이메일, 통화내역, 금융거래자료, 녹음파일, 녹취록 등 객관적인 증거들과 ii) 진술에 임하는 피고인들과 증인들의 모습, 태도, 진술의 뉘앙스, 진술 내용의 일관성 및 구체성, 진술 내용이 다른 증거관계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하여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진술들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 이 사건의 주요 인물
① 피고인 1은 1978. 3.경 ∠∠대학교 사범대학 체육학과에 입학한 뒤 1995. 3.경부터 현재까지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1998. 9.경부터 2010. 8.경까지 12년간 서울특별시 교육위원을 3차례 연임하였다. 피고인 1은 2004. 7.경 당시 간선제이던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지지를 받아 1차 경선에서 1위를 하였다가 2차 경선에서 공소외 22 전(前) 교육감에게 패배하여 낙선한 이력이 있다.
② 피고인 2는 1972. 3.경 ∠∠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 뒤 1991. 3.경부터 현재까지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1998년경 1년 동안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직을 맡았으며, 2005. 1.경부터 2년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직을 수행한 이력이 있다.
③ 피고인 3은 피고인 2의 ∠∠대학교 법과대학 및 같은 대학원 동기로 1985. 3.경부터 현재까지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대학원 1년생이던 1976년경부터 피고인 2와 친밀하게 교제하여 온 관계이다.
④ 공소외 6은 피고인 2와 동갑으로 ∠∠대학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93년경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활동을 통해 피고인 2를 만난이래 현재까지 피고인 2와 동료로서 교제하여 온 관계이다. 공소외 6은 1999년경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 공동의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⑤ 공소외 5는 피고인 2의 ∠∠대학교 법과대학 동기로 1972년경부터 피고인 2와 친밀하게 교제하여 왔고, 피고인 3의 대전중학교 및 대전고등학교 1년 후배이기도 하다.
⑥ 공소외 12는 1983. 3.경 ∠∠대학교 인문대학에 입학한 뒤 1992년경 한국불교사회연구소에서 일하면서부터 피고인 2와 알고 지내온 관계이다.
● 2010. 6. 2. 치러진 제18대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이하 ‘이 사건 교육감 선거’라 한다)에서 공소외 6은 피고인 2 후보 선거사무소의 상임선거대책본부장으로, 공소외 5는 회계책임자로, 공소외 12는 기획특보로 각 일하였다. 피고인 3은 피고인 2의 선거운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바 없다.
⑦ 공소외 4는 1978. 3.경 ∠∠대학교 인문대학 ▲▲▲학과에 입학한 뒤 그즈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부터 같은 해 ∠∠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한 피고인 1과 친밀하게 교제하여 온 관계이고, 이 사건 선거에서 피고인 1 후보 선거사무소의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일하였다.
⑧ 공소외 13은 피고인 1의 ●●●●대학교 제자로 1986. 3.경 ●●●●대학교에 입학한 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사로 잠시 일하다가 피고인 1과 알게 되었으며, 이 사건 선거에서 피고인 1 후보 선거사무소의 정책홍보특보로 일하였다.
● 공소외 4는 공소외 5와는 동서관계이고(공소외 5가 손윗동서이다), 공소외 6과는 ∠∠대학교 인문대학 선후배로(공소외 6이 선배이다) 이 사건 선거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관계이며, 공소외 12와는 1995년경부터 알고 지내 온 관계이다. ●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이 사건 선거 과정에서 서로 처음 만났다. ● 공소외 6 역시 이 사건 선거 과정에서 피고인 1을 처음 만났고, 반대로 공소외 4는 이 사건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피고인 2와 처음 만났다. ● 피고인 3과 공소외 5는 이 사건 교육감 선거가 끝난 후 2010. 11.경에야 비로소 피고인 1을 처음 만났다.
나. 이 사건의 전개과정
이 사건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전개과정을 피고인들 각각의 시각을 통해 균형감 있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 사건의 실체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는 주된 이유는 결국, 법률적인 관점에서 피고인 1과 피고인 2가 주고받은 2억 원의 성격이 피고인 1의 후보 사퇴행위와 대가관계 있는 금품으로 평가되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피고인 1의 시각에서는 그가 후보 사퇴를 한 시점부터 2억 원을 수수한 시점까지의 과정에서 금전 수수의 기대를 갖게 된 경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황사실들에, 피고인 2와 피고인 3의 시각에서는 피고인 1에게 금전을 제공하기로 마음먹고 그 금액을 2억 원으로 정하는 의사결정을 하게 된 경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황사실들에 초점을 두고 이 사건의 전개과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사건의 전개과정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크게 (1) 피고인 1이 후보를 사퇴하기까지의 과정, (2) 피고인 1이 피고인 2 측에 금전 지급을 요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3) 피고인 2, 피고인 3이 피고인 1과 만나 대화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4)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교부하기까지의 과정, (5) 2억 원을 주고받은 이후의 상황 등으로 나누고 그 세부적인 정황들을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피고인 1이 후보를 사퇴하기까지의 과정
① 피고인 1은 비교적 이른 시점인 2009. 하반기에 이 사건 교육감 선거에 입후보하기로 결심하고 2009. 11.경부터 선거운동을 준비하기 위한 선거기획팀을 운영하였다.
피고인 2는 2010. 2.경 이 사건 교육감 선거에 입후보하기로 최종 결심하고 . 그 후 교육감 후보 경선을 위한 선거 캠프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들은 2010. 1. 13.경 ‘2010 서울특별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 범시민 추대위원회’(이하 ‘교육감 후보 추대위’라고만 한다)를 결성하고 내부 경선 절차를 거쳐 이 사건 교육감 선거에 단일 후보를 추대하기로 하였다. 피고인 1, 피고인 2를 포함하여 공소외 32, 공소외 33, 공소외 34가 등 5명은 교육감 후보 추대위의 경선에 참가하기 위해 2010. 3. 20.경 경선 후보로 등록하였다.
그 후 피고인 1은 2010. 4. 5.경 교육감 후보 추대위의 경선에서 탈퇴하였고, 공소외 32는 2010. 4. 14. 경선 투표 당일 경선에서 탈퇴하였다.
2010. 4. 14. 실시된 교육감 후보 추대위의 경선 투표에서 피고인 2가 이 사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후보로 선출되었다.
③ 피고인 1과 피고인 2, 그리고 공소외 32 사이의 후보 단일화를 모색하기 위해 2010. 5. 9. 공소외 14, 공소외 35, 공소외 36 등 시민사회단체의 원로들의 중재 하에 위 3명의 선거사무소 측 관계자들이 모였으나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한편, 공소외 32는 그 다음날인 2010. 5. 10. 이 사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선거운동을 중단하였다.
④ 그 후 2010. 5. 중순경 서울시 남산 부근의 ○○○호텔 1층 커피숍에서 피고인 2, 공소외 6, 공소외 12와 피고인 1, 공소외 4가 함께 만났다. 당시 피고인 2, 피고인 1 사이에 후보 단일화 필요성에 대한 대화가 일부 오고 갔으나, 양측의 의견 차이로 인하여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⑤ 2010. 5. 18. 13:00경 서울시청 부근의 ‘△△△식당’에서 피고인 1, 공소외 4와 피고인 2, 공소외 12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당시 피고인 2는 피고인 1에게 후보를 피고인 2로 단일화하자고 제의하고, 피고인 1을 차기 교육감 선거에서 지원하겠다는 의사와 ●●●●대학교 총장 선거에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피고인 1은 이를 모두 거절하였다. 오히려 피고인 1은 서울특별시 교육청의 자문위원장 직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이에 대하여 피고인 2는 ‘피고인 1은 자문위원장의 자격이 있다.’는 취지로 화답하였다. 그 후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단일화를 위한 실무적인 협의는 실무자들에게 맡기자는 취지로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12는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차기 교육감과 ●●●●대학교 총장 선거에서 돕겠다고 했는데 피고인 1은 오히려 그보다 하찮은 자문위원장 직을 이야기하니 피고인 2가 그 자격은 충분하고 남는다고 대답하였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피고인 2가) ‘차기 교육감직에 도전하면 그것을 돕겠다. ●●●●대학교 총장 선거 때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 제안은 굉장히 큰 제안이었기 때문에 사실은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저는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피고인 2 후보가 선거를 처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피고인 2 후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원칙에 반해서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하시는 분이 아니셨고, 사실은 차기 교육감직을 이야기할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었는데요. 차기교육감이 되려면 후보 스펙이 좋아야 됩니다. 서울 ●●●●대학교 총장 출신이면 교육감 후보에 도전하는데 굉장히 유리합니다. 그래서 ●●●●대학교 총장 선거를 돕겠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그 정도면 굉장히 충분한 제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주42) ● 같은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4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자문위원장 직을) 그렇게 준다는 개념보다는 피고인 1 교수가 ‘내가 하면 잘 할 것 같다’는 정도로 표현했겠지요. 피고인 1 교수가 ‘그 자리가 힘있는 자리도 아니고 명예직인데... 명예직 같은 것을 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정도로 표현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덕담차원에서 피고인 2 후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였습니다.”(주43)
생각합니다. ”
하였습니다. ”
⑥ 피고인 1과 피고인 2가 위와 같이 △△△식당을 떠난 뒤 공소외 4와 공소외 12는 남아서 사당역 부근의 ‘□□□□’라는 카페로 이동하였다. 그 후 위 카페에 공소외 14와 공소외 6, 피고인 1과 공소외 13이 차례로 도착하여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협의가 시작되었다.
당시 피고인 1 측 누군가가, ‘피고인 1의 선거운동을 위하여 그때까지 지출된 선거비용이 많으니, 그 비용 중 7억 원 정도를 피고인 2 측에서 보전해 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하였고, 특히 공소외 13은 금전 지급과 관련된 각서를 작성하여 두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피고인 2 측에서 반발하며 공소외 13의 퇴장을 요청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해 졌다 .
⑦ 그러던 중 2010. 5. 18. 오후 늦은 시간 피고인 2가 □□□□ 앞에 도착하였다. 시민사회단체 원로로서 피고인 2, 피고인 1 모두의 선거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있던 공소외 14는 피고인 2를 위 □□□□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피고인 2, 피고인 1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양측을 한 테이블에 앉게 하였다. 그 자리에서 피고인 2는 ‘피고인 1이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면 모른척 하겠느냐.’는 취지의 언급을 하였다 . 이후 피고인 2는 곧 그 자리를 떠났고, 이어서 공소외 14, 공소외 6도 자리를 떠났다. 피고인 2 측에서는 공소외 12가 남아 피고인 1, 공소외 4와 10분 정도 더 대화를 나누었으나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
공소외 12는 피고인 2에게 전화를 하여 상황을 보고하였고, 피고인 2는 상임선대본부장인 공소외 6, 그리고 공동선대본부장인 공소외 15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 피고인 2의 입장을 피고인 1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하였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1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다.(주50) ‘피고인 1과 대화를 하면서 지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피고인 1 선거사무소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피고인 2와 전화하면서 피고인 1이 본선을 진행할 의사나 능력이 없어 명분을 택하고 스스로 사퇴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다음날인 2010. 5. 19.에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피고인 2가 김치찌개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나를 직접 찾아와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폴리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을 하고 껴안아 주었습니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15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그때 당시에 공소외 12가 저에게 (전화를 하여) ‘(피고인 1이) 10억 원 정도를 요구한다.’고 해서 제가 ‘호랑이 아가리에 대갈통을 밀어 넣는 짓이나 다름없다. 운동권을 통째로 말아먹는 짓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택도 없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받고 나서 선대위 사무실에 있는 몇 사람과 상의를 했습니다. 제가 ‘이런 전화가 왔는데 내 생각은 이렇다’고 이야기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동의해서 제가 공소외 12에게도 똑같은 표현을 했습니다.”(주51)
진술하였다.
했습니다. ”
피고인 2는 공소외 12와의 통화 직후 피고인 1에게 전화하여 재차 후보 단일화를 하자고 하면서 ‘피고인 1은 낙선하면 잃는 것이 많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하였으나 피고인 1은 ‘그런 조건이면 안된다.’고 말하며 거절하였다.
⑩ 피고인 1은 2010. 5. 18. 저녁 선거사무소에 돌아와 참모들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자신의 선거운동을 위한 플래카드 대금 4, 588만 원을 관련 업체에 송금하였다.
⑪ 피고인 1은 다음날인 2010. 5. 19. 오전 07:30경 평소 친분이 있던 공소외 16에게 전화를 하여 피고인 2와의 후보 단일화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구하면서 선거비용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토로하였다.
공소외 16은 당시 피고인 1에게 ‘선거운동 중단 시 유세차량 대여업체에 지출하여야 할 위약금이 피고인 1이 생각하는 것처럼 크지 않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하면서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고, 통화를 마친 뒤 피고인 2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피고인 1이 실제로 지출한 선거비용 3억 5, 000만 원을 보전해 주고 후보 단일화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취지로 제안하였다가 피고인 2로부터 거절당하였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16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다.(주53) ‘피고인 1에게 실제로 들어간 선거비용이 얼마냐고 물으니 3억 원 근처라고 하였다. 피고인 1로부터 요청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전화를 끊고 나니까 좀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 피고인 2에게 전화를 하였다. 피고인 2에게 피고인 1의 실제로 들어간 선거비용을 보전해줄 방법이 없냐고 했는데 피고인 2가 거절해서 통화를 길게 하지 못하였다.’ ● 공소외 16은 특히 피고인 2와의 전화통화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피고인 2는 ‘본인은 이동 중에 있고, 적절치 않다.’고 하였고, 굉장히 짧았던 통화로 기억합니다.”(주54) “저는 안 되는구나하고 포기했습니다.”(주55) ● 위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자기 동생 선거에 코가 석자인 사람인데요.(주56) 공소외 16이 아침 일찍 저에게 전화를 해서 ‘피고인 2 교수님, 단일화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라고 해서 제가 ‘이러저러 해서 안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때 묘하게 영어를 쓰셨어요. ‘제가요. 피고인 1 교수님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파이널 오퍼라고 하면서 3억 5, 000만 원을 말씀하십니다. 제가 보기에는 피고인 1 교수가 돈도 많이 쓴 것 같고 빚도 많은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 됩니다.’라고 했더니 ‘피고인 1 교수님 그러지 말고 10분이라도 생각해 보고 다시 전화를 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주57) “공소외 16이 3억 5, 000만 원을 저쪽의 ‘파이널오퍼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저한테 고려하라고 했고, 저도 영어로 ‘노땡큐입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주58)
진술하였다.
기억합니다. ”
포기했습니다. ”
사람인데요.
했습니다. ”
하였습니다. ”
⑫ 한편 피고인 1은 공소외 16과의 통화를 마친 뒤 2010. 5. 19. 오전 08:00경 공소외 4에게 전화하여 후보 단일화에 대한 전권을 위임할테니 피고인 1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후보 단일화를 마무리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
● 당시의 상황과 심정에 대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2010. 5. 18. 밤에) 플래카드 대금뿐만 아니라 다른 자질구레한 것도 많이 보냈습니다. 01:00 넘어서 들어와서 잤는데 04:00 넘어서 깼습니다. 제가 자면서 생각해 보니까 (피고인 2와 피고인 1) 두 사람 다 20%나 20%가 조금 넘게 득표를 해도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보통 사람과 다르게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명분을 중시하는데, 저는 2004년도 민주진보진영의 지지 후보로서 교육감 선거까지 나왔던 사람이고, 교육위원도 오래 했고, 제가 분열해서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04:00쯤 깼는데도 다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주60) “제가 공소외 4에게 ‘공소외 4야. 우리 (선거) 그대로 하기로 했으니까 내일 차량 인도 받으면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차량에 대한 준비다. 오늘 회의는 거기에 집중하자. 유세 차량에 탑승해서 유세할 사람들의 명단을 빨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공소외 4가 아주 기분이 나쁜 듯이 ‘차량 계약을 네가 멋대로 했는데, 그것을 왜 내가 책임을 지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심정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이 선거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재원이에게 전화를 해서 너에게 다 맡길 테니까 하면서 일임한 것입니다.”(주61)
않았습니다. ”
것입니다. ”
⑬ 공소외 4는 피고인 1로부터 위와 같은 부탁을 받은 뒤 2010. 5. 19. 14:00경 인사동의 ‘◇◇◇’이라는 찻집에서 공소외 6과 공소외 5를 만나 대략 30분에서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공소외 4는 공소외 6과 공소외 5에게 ‘피고인 2측에서피고인 1에게 5억 원을 지급하여 주는 조건’으로 후보 단일화를 하자고 제안하면서, ‘피고인 1이 2010. 8.경까지 갚아야 할 채무를 부담하고 있으니, 우선 내가(공소외 4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1억 5, 000만 원을 마련하여 피고인 1에게 주고 나중에 5억 원이 마련되면 그 중 일부를 위 대출을 갚는데 쓰겠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
당시 공소외 6은 공소외 5에게 위 제안이 받아들일 만 하다고 말하였고, 결국 공소외 6과 공소외 5가 공소외 4의 제안을 받아들여 후보 단일화를 위한 금전 지급 합의(이하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라 한다)가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서 공소외 4와 공소외 6, 공소외 5는 공소외 5가 위 합의의 이행을 책임지고, 공소외 6이 이를 보증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들은 5억 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지급 시기는 언제인지, 이와 관련하여 책임자인 공소외 5와 보증인인 공소외 6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논의한 바는 없다 .
공소외 6은 위와 같이 합의한 뒤 공소외 5에게 ‘돈을 주기로 하였다는 부분은 피고인 2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 공소외 6은 자신에 대한 증인신문기일인 제7회 공판기일, 그리고 공소외 4, 공소외 5와의 대질증인신문기일인 제16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신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당시 위와 같이 말하고 행동한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면서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하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공소외 6은 우선, i) 공소외 4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와 관련하여 ‘민주진보진영의 선거 승리, 즉 피고인 2의 당선을 위한 것이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저도 공명심도 있었고, 단일화가 안 되었을 때 선거에서 지는 것을 우려하였습니다.”(주65) “그 전에 공소외 37과 공소외 22 후보가 나왔을 때 공소외 38이 있어서 진 것은 명확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나름대로 후보 단일화에 대해서 절실했던 것도 사실입니다.”(주66)(주67) “공소외 5가 돈 이야기에 대해서 그때 꺼려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후보 단일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것을 성사시켜야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주68) 라고 진술하고, ii)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피고인 2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이유와 관련하여는 “제가 그 당시 지켜보았을 때 피고인 2 후보는 돈 문제에 대해서 워낙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선대본부장이었습니다. 저는 선거가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당시 단일화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사시키고 싶었는데, 괜히 그 이야기를 해서 어그러지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주69) “제가 단일화를 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2 후보의 태도를 보니까 돈 문제가 나오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아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합의되었다는 이야기만 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두 사람이 합의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어야 득표에 도움이 되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주70) “어차피 공소외 5가 (피고인 2에게) 연락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이야기를 할 때 돈 이야기는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주71) 라고 진술하고, iii) 마지막으로 공소외 5가 위 합의 이행의 책임자가 된 경위와 관련하여는, 전체적으로 ‘애초부터 공소외 5와 공소외 4 사이에 이야기가 된 상태에서 보증인이 필요해서 나를 부른 것으로 이해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공소외 5는 피고인 2 후보와 친밀한 사이였습니다.”(주72) “(공소외 5는)피고인 2 후보 측 대리인이라고 할까요? 공소외 4와 함께 공소외 5도 당사자로 되어 있었고, 나중에라도 이런 저런 일이 있을 때 피고인 2 후보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리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주73) 라고 진술하였다. ● 한편 공소외 5는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이미 결렬된 돈 이야기를 꺼내서 제가 ‘끝난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나가려고 했는데 공소외 6 교수가 ‘이건 받을 만 하다. 조금 더 들어보자’고 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주74) “공소외 4가 ‘진영에서 하기로 한 것이니까 진영의 대표로 공소외 6 교수님이 당사자가 되고, 공소외 5는 보증인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상당히 논리적으로 표현하면서 안을 먼저 냈습니다. 공소외 6 교수는 ‘적당하지 않다. 2 후보와 공소외 5는 오랜 절친이라서 가까운 사이니까 당사자로 하고, 나를 보증인으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주75) “피고인 2에게 이야기를 하면 짐이 될 것 같아서 (금전과 관련된) 이야기를 안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주76) “(금전과 관련된) 조건이 붙으면 안 되잖아요. 피고인 2 후보의 확고한 입장이었습니다.”(주77)
우려하였습니다. ”
사실입니다. ”
것입니다. ”
했습니다. ”
했습니다. ”
것입니다. ”
사이였습니다. ”
있었습니다. ”
앉았습니다. ”
했습니다. ”
먹었었습니다. ”
입장이었습니다. ”
⑭ 한편, 공소외 4는 당시 위와 같이 합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공소외 5에게 ‘피고인 2가 당선되는 경우 지급 금액을 7억 원으로 올려 달라.’는 의사를 밝혔으나, 공소외 5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5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합의되고 나서 일어서면서 공소외 4가 손가락 7개를 펴면서 ‘이기면 7개다.’라고 한 것만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언뜻 생각해 보니까 여태까지 이야기는 졌을 때 이야기인가 라고 언뜻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나왔습니다.”(주78)
나왔습니다. ”
⑮ 공소외 4는 2010. 5. 19. 오후에 피고인 1에게 ‘피고인 2 측에서 피고인 2가 당선되는 경우에는 7억 원, 낙선하는 경우에는 5억 원을 2010. 8.말까지 피고인 1에게 지급하는 조건으로 단일화 협상이 되었다.’, ‘급한 돈 1억 5, 000만 원은 우선 내가(공소외 4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너에게(피고인 1에게) 주고 이후 피고인 2 측으로부터 돈을 받아 대출을 갚기로 하였다.’고 보고하였다(이하 위 보고 내용을 ‘
피고인 박명기이 보고받은 단일화 합의내용
’이라고 한다).
한편 공소외 5는 피고인 2에게 전화를 걸어 ‘피고인 1이 조건 없이 후보자를 사퇴하기로 하였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5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공소외 4와 공소외 6이 있는 자리에서 제가 피고인 2에게 ‘단일화가 타결되었다. 기자회견 준비해라.’고 했습니다.”(주79) “굉장히 좋아 했고, ‘동서끼리 큰일을 해 냈구나.’라고 했습니다.”(주80) “그때 전화 상황이 피고인 2는 무조건 단일화로 타결되었다고 느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주81) “피고인 2 후보는 무조건적인 단일화가 성사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끝나고 캠프에 가니까 기자회견장으로 몰려가서 텅 비어 있었습니다. 피고인 2 교육감은 피고인 1 교수의 대승적 결단에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포옹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습니다. 저는 둘의 관계가 그렇게 가기를 원했습니다.”(주82) ●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자신은 피고인 1이 선거비용보전이라는 조건 없이 단일화에 응한다는 말로 알았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공소외 5 선생이 아주 낮은 음성으로 깔면서 ‘단일화가 성사됐다. 단일화가 타결됐다. 너 이제 발 뻗어도 되겠다.’라고 이야기를 했고, 제가 ‘정말이야’라고 반색을 하면서 반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야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돈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개과천선 했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이 확실히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떻게 됐느냐’라고 물으니까 공소외 5 선생이 공소외 4가 자기를 만나자고 해서 논의를 한 끝에 ‘단일화가 됐다. 조건 없이 됐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양반들이 정말 막판에 명분과 명예를 선택했구나. 굉장히 잘됐다. 공소외 12의 말이 맞네’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공소외 5 선생이 저에게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돌아가서 기자회견 준비해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주83) “저는 공소외 12한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공소외 12에게 전화를 해서 ‘너 도사네.’라고 하였습니다. 공소외 12한테 전화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때 칭찬을 했는데 제가 ‘너는 교수가 아니니까 폴리페서라고 할 수도 없고 뭐라고 해야 하나. 폴리프로페셔널이라고 하면 좋겠구나.’라는 이야기를 했고, ‘피고인 1이 진짜로 백기투항을 했다, 당신 진단이 옳았다.’라고도 하였습니다.”(주84) “그 기자회견이 끝나고 캠프로 돌아왔을 때 공소외 17 대변인과 저와 둘이서 옛날 화양극장(지금의 서대문역 부근) 뒤쪽 조그마한 김치찌개 집에 갔는데, 공소외 12가 왔고 같이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그렇게 좋아하고 조건없는 단일화가 되어서 기뻐하고 “공소외 12 정말 당신 대단하다, 당신 말대로 되었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공소외 12가 저한테 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주85)
했습니다. ”
했습니다. ”
느껴졌습니다. ”
원했습니다. ”
이야기했습니다. ”
하였습니다. ”
것입니다. ”
피고인 2와 피고인 1은 2010. 5. 19. 18:30 환경재단 ☆☆☆☆☆홀에서 후보 단일화 사실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기자회견 직전 공소외 14, 공소외 11, 공소외 23, 공소외 24 스님 등 시민사회단체 원로들과 피고인 2, 피고인 1이 만나 후보 단일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피고인 1은 ‘대의를 위하여 후보직을 사퇴하겠다.’는 취지로 말하였고, 피고인 2는 ‘저(피고인 2)로 인하여 피고인 1이 사퇴하게 되었으니, 피고인 1을 아우로 맞이하여 잘 지내겠다.’는 취지로 화답하였으며, 공소외 14 등 시민사회단체 원로들 앞에서 서로 정책연대를 하기로 약속하였다.
(2) 피고인 1이 피고인 2에게 금전 지급을 요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2010. 6. 2. 치러진 이 사건 교육감 선거에서 피고인 2가 34.3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피고인 2는 2010. 7. 1. 제18대 서울특별시 교육감으로 취임하였다.
이 사건 교육감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제5대 서울시 교육위원으로서의 임기가 남아있던 피고인 1은 2010. 7.경 서울시교육청의 교육감 집무실로 피고인 2를 찾아가 교육청의 인사 문제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피고인 2와 사이에 언쟁이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취임 하고 나서 제가 교육감실에 처음 인사하러 간 날입니다. 교육 위원회에 회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갔다가 미리 약속을 잡은 것 같지도 않고 전화를 하러 갔겠죠. 인사하러 간 것이기 때문에 취임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때는 아직 공소외 4가 저를 제대로 따돌리지도 않고(주86) 어떻게 될지 알지도 못하는데 제가 (집무실을) 뛰쳐나간다는 것이 말이 안 되고요. 그것은 아닙니다. 약간 언성이 높았던 것은 8. 19.입니다.”(주87) “7월에 인사하러 가서 공소외 13의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주88) “그때는 큰소리로 언성을 높인 것이 아니고, ‘아니, 그건(공소외 13에 대한 평가는) 생각하기 나름이죠.’라는 정도로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는 제가 화가 조금 나 있을 때였습니다.”(주89) ● 같은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2010. 7.말경이 처음이 아니었고 그 이전에도 중국음식점에서 만났을 때 피고인 1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여 불쾌하였고, 2010. 7.말경 집무실에서도 언쟁이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그때도 고성이 왔다 갔다 했거든요.”(주90) “제 기억에는 7월 말에도 피고인 1 교수가 한 번 뛰쳐나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검찰조사를 받을 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번은 제 사무실에서 뛰쳐나간 적이 있고, 한 번은 음식점에서 그랬노라고요. 11월 전후한 ‘◁◁’이라는 곳에서 공소외 6 교수를 만날 때 피고인 1 교수가 한 번 뛰쳐나갔고, 교육감 사무실에 있을 때 피고인 1 교수가 굉장히 격앙된 상태로 뛰쳐나갔습니다. 그 경위는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피고인 1 교수가 예우해드려야 될 분이고 제가 잘 들어야 될 분이라서 듣다가 제가 기가 막히니까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말씀들을 하셔서 저도 참지 못하고 같이 소리도 지르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고인 1 교수가 자기 분을 못 이기고 뛰쳐나간 것입니다.”(주91) “또 7월 말에는 저희 비서실장을 포함해서 그때 와 있었던 3명의 비서들에 대해서 뒷조사를 했는데 ‘약점 없는 사람 어디 있느냐’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런 부분도 어이가 없기도 하고 힘이 들었던 부분입니다.”(주92)
않고
입니다. ”
사실입니다. ”
때였습니다. ”
했거든요. ”
것입니다. ”
부분입니다. ”
한편, 공소외 4는 금융당국의 주택담보대출규제조치(DTI)와 관련된 문제로 인하여 피고인 1에게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1억 5, 000만 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고, 피고인 1은 공소외 4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피고인 2 측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시하였다.
이에 공소외 4는 2010. 7.경부터 8.경 사이에 공소외 6에게 전화를 하여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이행해달라는 취지로 요청하고, 2010. 8.경에는 공소외 12를 만나 위 합의 사실을 알려주며 공소외 12 개인의 자금 또는 공소외 12가 재직하고 있는 회사의 자금이라도 빌려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공소외 12는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 .
● 공소외 4는 공소외 6과 전화 통화를 마친 이후 2010. 8. 18.경 피고인 1에게 한차례 이메일을 보냈다. 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이메일 출력물 사본에 의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주94) 『전화 받지 않는 것, 양해 바랍니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내 심적으로 너무 부담이 되어 피하는 것이니 특별히 오해는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살이에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것, 심리적 상태들이 있을 수 있다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분간도 통화보다는 문자나 이메일로 의견 교환합시다. 어제 공소외 12씨를 만났고 8월말까지의 약속 이행을 제기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답변을 준다니 일단 이 때까지는 기다려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말을 바꾸려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 공소외 6교수님 증언을 이야기하면서 쐐기를 박았습니다. 피고인 1 교수가 무척 화가 나 있어서 피고인 2 교수에게 직접 문제 제기할 수도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자문위원장 등의 정책연대 문제에 관련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지금 열심히 자문기구를 설계하고 있다 합니다. 원래 취임 후 3개월 정도는 업무 파악 시기로 보기 때문에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피고인 1 교수가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튼 이번 주 금요일(주95)에 공소외 12, 공소외 17, 나 - 이렇게 3명이 만나기로 했는데, 이 때 대략 ‘상호 신뢰’의 윤곽이 잡힐 것 같고, 그래서 나의 역할을 마무리 할 시기도 다다를 것 같습니다. 금요일 저쪽을 만나 본 후에 통화합시다. 양해 바랍니다.』
같다.
금요일
한편, 공소외 4는 그즈음부터 피고인 1의 전화 연락을 피하기 시작하였다 .
피고인 1은 2010. 8. 19. 또는 20.경 다시 한번 교육감 집무실로 피고인 2를 찾아갔다. 피고인 1은 당시 교육감 비서실장인 공소외 17이 배석한 상태에서 피고인 2에게 ‘후보 단일화 당시의 약속을 지켜라.’는 취지로 항의하였고, 피고인 2는 피고인 1의 위와 같은 항의에 대하여 ‘무슨 약속을 말하는 것이냐.’는 취지로 말하면서 맞섰다.
이에 위 피고인들 사이에 언성이 높아져 그 소리에 놀란 교육감 비서실 직원이 교육감 집무실로 들어오기도 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피고인 1이 혼자 준비해 온 이야기를 계속 하길래 처음에는 응수를 하다가 나중에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고 흘려버렸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기도 하였다. “피고인 1 교수가 저를 찾아오면 늘 정책연대로 시작하는 겁니다. ‘소통이 안 된다. 나를 이용만 해먹고 팽하는 것이냐. 섭섭하다.’라고 하다가 이야기가 좀 더 진행되면 ‘내가 10% 득표 못했겠느냐. 내가 15% 득표 못했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혁신학교정책이나 또는 인사와 관련해서 왜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죠. 거의 저를 직접 응시하고 말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약간 다른 곳을 정확하게 한 15도 올린 채로 응시를 하고 혼자 준비해 온 이야기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독백하는 방식으로 짝 풀어내거든요. 그런 이야기 끝에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이 양반은 갑자기 그러다가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좀 뜬금없고 밑도 끝도 없죠. 그래서 제가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라고 여쭤보는 것이고요. 좀 안 맞으니까요. 그러다가 제가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는 이야기를 2번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제가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라고 반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야기한 것은 다른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때 자꾸 그렇게 물으니까 제가 ‘아 내가 진영의 대의’ 제가 늘 이야기한 그 워딩으로 그대로 이야기해요.(주98) 이렇게 이야기한 적은 있습니다. 그것을 갖고 피고인 1 교수가 계속 이 법정에서 진술하기를 피고인 2 교육감이 엉거주춤하게 뭘 인정하더라 이런 표현을 썼는데요. 그 이야기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주99) ● 같은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8. 19.이나 20.에 갔는데 그 날은 벌써 교육감이 취임하고 나서도 50일이 지난 날입니다. 그리고 초기에 중요한 교육정책들이 많이 확정되는 때인데 저에게 일언반구 자문을 구하거나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또 7월에 교육위원들을 교육감이 식사를 대접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식사하면서 옆에서 술을 따라 주시기에 ‘교육감님 한 번 언제 정책과 관련해서도 그렇고 한 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니까 교육감이 ‘곧 연락드리죠.’라고 해놓고는 깜깜무소식이었습니다. 하여튼 이런 식으로 저를 처음부터 배제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8. 20. 아까 공소외 47 변호사님이 질의하신 것처럼 그런 이유를 대면서 제가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라고 이야기했고 그때는 제가 큰소리를 냈었습니다. 큰소리라는 것이 아주 큰소리가 아니고 경직된 입장에서 제가 따져 묻듯이 물었습니다. 제가 교육감님에게 그때 ‘교육장 인사는 저도 공약으로서 공모제를 한다고 공약을 냈기 때문에 그것은 잘 하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러면서 ‘그런 정책을 바꾸려면 저에게 조금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교육감이 ‘아니, 내가 피고인 1 교수에게 인사와 관련해서 굳이 보고할 이유가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정책연대할 때 원로들도 그러지 않았습니까?’라고 하니까 교육감이 ‘저는 정책연대는 선거를 할 때 다 반영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주100) “제가 피고인 2 교육감에게 8. 19.에 집무실에 찾아가서 정책연대 이야기를 하다가 맨 끝에 ‘저의 선거 비용 해결을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던 이유가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물어보자 피고인 2 교육감은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하면서 부인을 했습니다. 제가 피고인 2 교육감에게 ‘제가 선거후유증으로 어려움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던 이유가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저의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단일화 문건에도 그렇게 정리를 했습니다.”(주101) ● 한편,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17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피고인 1이) 화가 나서 거칠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주102) “(피고인 2도) 거기서는(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화를 냈습니다. 왜 내가 당신에게 인사문제를 상의해야 하느냐고 정색을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주103) “그때 제가(공소외 17이) 공소외 13에 대하여 평판을 조사했는데 평판이 좋지 않고 위험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취지로 이야기하였습니다.”(주104) “그때는 저에게 역정을 내셨습니다. ‘이것은 공소외 17 실장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공소외 17 실장이나 비서실 사람들은 얼마나 깨끗하고 흠이 없느냐.’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제 이야기에 제지를 해서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주105)
이야기해요.
아닙니다. ”
없었습니다. ”
했습니다. ”
모습이었습니다. ”
하셨습니다. ”
이야기하였습니다. ”
않았습니다. ”
공소외 13은 2010. 8.경 여의도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공소외 12를 만나 피고인 1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당시 공소외 12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와 관련하여는 공소외 4와 공소외 5가 책임질 문제이지 그것을 근거로 어떤 요구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자, 공소외 13은 “그런 상황은 알지만 어쨌든 피고인 1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합치자.”고 말한 뒤, 피고인 2에게 알리지 말고 ‘교과교실제’라는 이권사업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학교 선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
한편, 공소외 13은 공소외 12와의 위와 같은 대화 내용을 공소외 12 몰래 녹음하여 두었다 .
피고인 1과 공소외 4, 공소외 13은 2010. 9. 초순경 불상의 장소에서 함께 만났다. 그 자리에서 피고인 1은 공소외 4에게 2010. 8. 19.경 또는 20.경 피고인 2의 집무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설명하고, 피고인 2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에 대해서 모른척하고 있다며 대책을 상의하였다. 이에 공소외 4는 ‘현재 공소외 6, 공소외 12 등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당시 그 내용을 피고인 2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는 상황 아니냐 ’는 취지로 말하며 피고인 1이 기자회견을 하여 폭로하는 방법과 공소외 6을 통해 압박하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한편, 공소외 13은 위와 같은 3자간의 대화 내용을 공소외 4 몰래 녹음하여 두었다 .
피고인 1과 공소외 4, 공소외 13은 2010. 9. 중순경 ■■대학교 앞 일식집에서 공소외 11과 함께 만났다. 그 자리에서 피고인 1은 공소외 11에게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경위를 설명하고, 공소외 4는 공소외 11에게 ‘피고인 1과 피고인 2, 공소외 6, 공소외 4 등 4명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주선해주면 피고인 2가 있는 자리에서 직접 공소외 6에게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내용에 대하여 말해보라고 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꺼냈으나, 공소외 11은 ‘피고인 1이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피고인 2를 만나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도와줄 마음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피고인 2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 1은 공소외 11에게, 정책연대와 인사 관련 부분은 포기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답하기도 하였다 .
피고인 1은 2010. 9.경 공소외 14에게 전화하여 ‘피고인 2와의 정책연대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고, 피고인 1의 인사 추천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위 통화 직후 공소외 14는 피고인 2에게 전화하여 피고인 1의 말을 전달하면서 ‘피고인 1을 따뜻하게 대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취지로 말하였는데, 피고인 2는 이에 대하여 ‘새로운 교육정책을 한다고 집권하였는데 피고인 1의 정책이 구태의연하고 추천 인사가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취지로 대답하였다 .
피고인 1은 2010. 9.경에서 2010. 10.경 사이에 공소외 6의 ∠∠대학교 연구실로 그를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피고인 1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와 관련하여 자신이 보고받은 합의 내용과 그밖에 위와 같은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을 피고인 1의 입장에서 정리한 ‘단일화 협상 경과와 내용’이라는 문서를 공소외 6에게 건네주면서 자신이 현재 경제적으로 어렵고, 피고인 2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하였다.
공소외 6은 그로부터 며칠 뒤 공소외 17을 통하여 피고인 2에게 연락하여, 2010. 10. 22.경 인사동의 ‘◁◁’이라는 식당에서 피고인 2와 피고인 1, 공소외 6이 함께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
(3) 피고인 2, 피고인 3이 피고인 1과 만나 대화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한편, 2010. 10. 8.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되었는데, 피고인 2는 당일 휴회 시간에 국회의원들 중 한 명으로부터 “피고인 1 교수가 굉장히 격앙되어 있고, 뭔가 사고를 칠 것 같다. 당신도 무슨 약속을 했다며, 했으면 지켜야지 .”
라는 말을 들었다.
그 직후 피고인 2는 비서실장인 공소외 17에게 위 국회의원의 위와 같은 말을 전하면서 ‘피고인 1이 주장한다는 합의에 대하여 즉시 조사해 볼 것’을 지시하였다. 피고인 2는 그로부터 며칠 뒤 공소외 17로부터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는 보고를 받았다 . 이에 피고인 2는 선거사무소 관련 인사들과 더 친밀한 과계에 있던 공소외 7를 교육감 집무실로 불러 다시 조사해보라고 부탁하였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당시 그 국회의원이 피고인 1 교수가 굉장히 격앙되어 있으니 반드시 내막을 알아봐야 된다고 강조하여서 공소외 12가 혹시 이면약속을 했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 국회의원은 피고인 1 교수도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제가 그 사실을 몰랐는데 본인이 말씀해주셔서 수긍이 되었습니다. 피고인 1 교수 쪽에서 이상한 얘기를 하고 다니고 약속을 했는데 약속을 안 지킨다고 그런다, 나한테 솔직히 얘기해봐라, 뭐가 있었냐 그러기도 했습니다. 또 피고인 1 교수가 대단히 격앙된 상태라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는 정말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 제가 5. 18.에 진영의 대의를 위하여 단일화를 하면이라는 말을 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오해를 할 수 있나요.”라고 반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그것 말고 무언가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주118) “피고인 1 교수가 왜 지금까지 나한테 보인 행태를 보였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그래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나 해서 굉장히 걱정이 되고요. 그래서 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나설 수 없기 때문에 공소외 17 비서실장을 시켰고요. 그 1차 미션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여전히 제가 100% 수긍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 선거운동한 사람들과 더 가까운 사이에 있는 공소외 7 교수한테 부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소외 7 교수는 당선인 시절에 비서실장을 했고 공소외 17 대변인보다는 저하고 훨씬 더 가까웠던 사이이고 더 오랫동안 안 사이이고 해서 공소외 7 교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주119)
먹었습니다. ”
했습니다. ”
공소외 7은 피고인 2로부터 위와 같은 부탁을 받고 공소외 6, 공소외 12, 공소외 5 등 피고인 2 측 선거캠프 관계자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 후보 단일화 당시 피고인 1 측에 약속해 준 것이 있었는지를 물었으나 이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하였다.
결국 공소외 7은 피고인 1의 ●●●●대학교 연구실로 그를 직접 찾아가 후보 단일화 과정에 대하여 물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고인 1로부터 ‘공소외 5와 공소외 4가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금전 지급 합의를 하였다.’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7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피고인 1 위원이 그때 굉장히 화를 내셨습니다. ‘전부 다 알고 와서 지금 나 데리고 장난치느냐’라는 식으로 화를 내시면서 ‘그 이야기는 2 교육감에게 가서 물어봐라, 공소외 12에게 가서 물어봐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닙니다. 정말 저는 잘 몰라서 그럽니다. 이야기 좀 해 주시죠’라고 해서 했습니다. 그러니까 1 위원이 ‘아 그것 몰라요? 공소외 4와 공소외 5가 약속하고 그랬잖아요’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더 자세한 내용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주121) “그 내용(약속의 내용)에 대해서 피고인 1이 설명해 줄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물어본 것에 대해서 굉장히 안 좋게 생각을 하셨습니다.”(주122) “‘다 알면서 왜 그러는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나중에 피고인 1 위원과 제가 몇 번 만나 소통하면서 그런 오해들이 다 풀어졌는데 처음 만났을 때는 그랬었습니다.(주123)
못했습니다. ”
하셨습니다. ”
그랬었습니다.
공소외 7은 피고인 1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듣고 같은 날 서울시내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던 피고인 2를 찾아가 식당 문 앞에서 ‘피고인 1을 찾아가 직접 확인하였는데 공소외 5가 후보 단일화 당시 피고인 1 측에 금전을 지급하는 약속을 해 주었다고 한다.’는 취지로 보고하였다.
● 당시의 상황을 공소외 7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처음에는 (식당) 문 바로 앞에서 굉장히 소곤소곤하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피고인 2가) ‘말도 안 된다.’라고 하면서 화를 내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큰소리로 이야기하였습니다.”(주124)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2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아유 뭐, 청천벽력이죠. 제가 ‘말도 안돼’, ‘있을 수 없어’ 이러고 ... 머릿속은 하얘지고, 다리는 후들후들했습니다. 도대체가 ... 사실 교육감 취임한지 이제 100일 조금 지났을 때였거든요. 그때는 제가 2011년 피고인 2표 예산을 짜기 위해서 불철주야로 일을 하던 때였습니다. 10. 24.부터는 핀란드, 스웨덴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10. 24. 일요일에 가서 11. 1. 월요일에 귀국을 했는데 월요일 아침에 와서 점심부터 교육청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 시기에 그런 말을 들으니 오죽했겠습니까.”(주125)
이야기하였습니다. ”
오죽했겠습니까. ”
피고인 2는 공소외 7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듣고 피고인 3에게 연락하여 공소외 5와 함께 만나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피고인 2와 피고인 3, 공소외 5는 2010. 10. 20.경 서울 광화문 부근의 ‘▽’이라는 음식점에서 한차례, 그리고 며칠 뒤인 2010. 10. 23.경 헌법재판소 부근의 ‘◎◎’이라는 음식점에서 다시 한차례 만났다. 당시 피고인 2는 그 두 번의 만남에서 공소외 5에게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과 관련하여 물었고, 공소외 5는 ‘나와 공소외 4가 피고인 1에게 5억 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하였고, 공소외 6이 당시 보증을 하였다.’, ‘피고인 1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서 공소외 4가 그의 집을 담보로 1억 5, 000만 원을 대출받아 급한 불을 꺼주기로 하였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되었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 얼마든지 뭉갤 수도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과 검찰에서 다음과 같이 상세히 진술하였다. 우선 i) 피고인 3과 함께 공소외 5를 만나게 된 경위와 관련하여는 “제가 공소외 7 교수로부터 공소외 5 선생이 연루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공소외 5 선생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데 공소외 5 선생만 따로 만나게 되면 제가 굉장히 화를 내고 막 닦달을 할 것 같아요. 정말 오랜 우정이 깨질 것 같은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피고인 3 교수한테 전화를 합니다. 피고인 3 교수한테 부탁을 해서 ‘나 좀 꼭 만나다오. 그리고 만날 때 공소외 5도 같이 불러다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주126) 라고 진술하였고, ii) 2010. 10. 20.경 ‘▽’에서의 모임과 관련하여는, “저는 당연히 ‘너 사고쳤다며?’라고 대화를 시작을 하였던 것이고요. 제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라고 했을 때 공소외 5 선생은 ‘그래 내가 공소외 6 교수하고 같이 이렇게 저렇게 했다’라고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주127) “그러고 저는 다음 일정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찍 떠나게 됐습니다. 떠나면서 제가 피고인 3 교수에게 ‘피고인 3 교수 네가 좀 보훈이하고 이야기를 좀 들어봐 다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저는 떠났습니다. 그때 공소외 5 선생이 ‘그래 내가 공소외 6과 같이 이렇게 했다’라고 했을 때 제가 또 성질을 못 참고 ‘결자해지잖아. 네가 해결해’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주128) “그 식당은 아주 얇은 베니어판 하나로 칸막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칸막이 뒤로 5-6명의 손님이 왁자지껄했습니다. 거기에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 돼서 다시 한 번 ◎◎에서 3명이 만났습니다.”(주129) 라고 진술하였으며, iii) 2010. 10. 23.경 ‘◎◎’에서의 모임과 관련하여는, “맨 처음에 제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이야기를 할 때 짜증을 섞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랬더니 공소외 5는 특유의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공소외 5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검찰 조서에서도 자세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소외 5가 “5억 원을 주기로 했는데, 둘 사이에서 합의를 했고 공소외 6 교수가 보증을 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가 보기에는 내가 너에게 위임받은 것도 아니고 부탁받은 것도 아니고 내가 합의를 집행할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냥 네가 하기 달려 있고, 네가 내키지 않으면 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내가 얼마든지 뭉갤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대목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조금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고, 하늘이 노래졌습니다.”(주130) “처음에는 너무너무 끔찍했지만, 나중에는 코미디 같아서 실소를 금치 못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주131) “꼬치꼬치 캐물어 보지 못한 것이 지금 와서 굉장히 많이 후회가 됩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꼬치꼬치 캐물어 본들 낙이 없는 거예요. 거기다가 캐물으면 친구를 추궁하게 되고 싸우게 될 것 같아서 공소외 5가 하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한두 번 추임새처럼 제가 질문을 했겠죠. 그래서 그때도 자세한 이야기를 못 들었습니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그것이 굉장히 후회가 되었습니다.”(주132) “저는 공소외 5와 ◎◎에서 만난 이후로 대화한 적이 없습니다.”(주133) 라고 진술하였다. ● 같은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5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정확한 워딩까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합의에 이른 경과나 구체적인 내용을 다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 이야기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에서의 대화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에서의 짤막했던 대화내용은 기억이 조금 납니다.”(주134) “첫 번째 만났을 때는 그게 무슨 자리인지 몰랐습니다. ‘▽’에서 식사를 하자고 해서 갔는데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 같으면 말을 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감은 저에게 말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에서 만났을 때는 정말 시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정 때문에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금방 갔습니다. 저는 물어보면 대답을 합니다. 피고인 2 교육감이 안 물어보는데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제 말을 들어보려면 피고인 2 교육감이 ‘네가 겪었던 경위가 어떻게 되고 구체적인 내용을 말해 봐라.’고 하면서 말을 시켜야 됩니다. 10분이든 20분이든 시간을 주고 이야기를 해야죠. 이런 이야기는 되도록 공개된 자리에서 안하고 싶은데요. 저는 이미 피고인 2 교육감에 대한 불만을 피고인 3 교수를 만나서도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피고인 2 교육감과 오랜 친구지만 소통 방식에 문제를 느낍니다. 피고인 2 교육감은 자기가 주도해서 물어봅니다. 그리고 피고인 2 교육감은 바쁜 사람이고, 만나기 굉장히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항상 어떤 일정이 있을지 모르니까 저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피고인 2 교육감이 저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진술해 봐라.’고 말을 시켰어야 했습니다. 피고인 2 교육감은 자기가 관심 있는 부분만 주도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상황이 그렇게 돼서 이야기를 안 하게 된 것이고, 제가 이야기를 안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주135)
했습니다. ”
했습니다. ”
것입니다. ”
만났습니다. ”
노래졌습니다. ”
있었습니다. ”
되었습니다. ”
없습니다. ”
납니다. ”
아닙니다. ”
한편, 피고인 2와 피고인 1, 공소외 6은 앞서 에서 본 바와 같은 경위로 사전 약속에 따라 2010. 10. 22.경 인사동의 ‘◁◁’이라는 식당에서 만났다. 당시 피고인 2와 공소외 6이 피고인 1보다 먼저 도착하여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고인 2는 공소외 6으로부터 ‘내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보증을 한 것이 사실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제가 마찬가지로 공소외 6 교수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고를 쳤네요’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공소외 6 교수가 굉장히 어색하게 ‘그래 그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공소외 6 교수가 저에게 ‘언제 알았냐’고 해서, 제가 ‘진짜 며칠 전에 알았어’라고 하니까, 공소외 6 교수가 ‘공소외 5 선생이 진짜 이야기를 안 했구나. 내가 공소외 5 선생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어. 그렇다고 진짜 이야기 안 하나. 나는 얼떨결에 불려나가서 보증을 섰는데 나는 여기에 개입 좀 안하게 해줘. 나는 ∠∠대학교 법인화 반대투쟁도 앞장 서야 되고 해서 그것에 안 맞아’라고 해서, 제가 ‘알았다’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의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주136) “굉장히 겸연쩍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선거 운동기간 중에 잠시 경계를 넘은 일들 같습니다. 저의 당선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우정일 텐데요. 그래서 제가 그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서 막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사실. 공소외 6 교수와 제가 그래도 오랜 사이인데요. ‘하여간 이건 내가 알아서 해야지, 뭐.’ 이런 식이지요. 저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내용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후회가 됩니다.”(주137) ● 위 ‘◁◁’에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6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묘사하였다. “(피고인 2에게) 제가 보증을 섰다는 이야기는 했습니다.”(주138) “제가 피고인 2 교육감에게 야단을 맞았습니다.”(주139) “그런 취지(피고인 1이 오면 화가 많이 나 있을 떼니까 살살 달래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피고인 1 교수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 피고인 2 교육감에게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주140) ● 그밖에도 공소외 6은 이 법정에서, 피고인 1 측으로부터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이행하라는 취지의 의사를 전달받고 이를 회피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보증을 했다는 부담은 분명히 있었으나 그 합의를 실제로 이행할 여건은 안되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기도 하였다. “피고인 1 교수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상당히 부정확한 부분이 많았고, 그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때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핵심적인 내용은 자기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피고인 2 교육감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해서 제가 ‘알겠다.’고 했습니다.”(주141) “저는 그 당시 서울대법인화반대공대위 상임위원장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일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싸움을 할 때는 자신의 흠결이 없어야 됩니다. 흠결이 생기는 순간 싸움을 못합니다.”(주142)
갔습니다. ”
됩니다. ”
했습니다. ”
맞았습니다. ”
같습니다. ”
했습니다. ”
못합니다. ”
위 자리에 뒤늦게 도착한 피고인 1은 피고인 2에게 후보 단일화 당시의 약속을 지키라고 하였고, 피고인 2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맞섰다. 둘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면서 피고인 2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공소외 6에게 ‘보증을 선 사람이 직접 책임지라.’는 취지로 소리쳤고, 피고인 1은 피고인 2에게 ‘위선자’라는 취지로 비난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당시 위 피고인들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부근에 있던 공소외 7이 식당으로 찾아 왔다가 자리에서 나오는 피고인 1과 마주치기도 하였다.
● 공소외 6은 이 법정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말이 오고가면서 우당탕 했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하였고, 그렇게 부드러운 자리가 아니었습니다.”(주143)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피고인 1 교수가 ‘편하게 식사할 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오래지 않아서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피고인 1 교수가 뛰쳐나갔습니다.”(주144) “살벌했습니다.”(주145) ● 같은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공소외 5가 사고친 것을 알고 처음에는 미안하다는 취지로 말했던 것 같은데 피고인 1이 너무 몰아세우니 나도 화가 나서 결국 언쟁을 하게 되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제가 처음으로 피고인 1 교수가 저를 위협을 가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은 굉장히 작은 음식점인데 민주진보의 탈을 쓴 희대의 사기꾼이다, 장삼이사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주 큰 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공소외 6 교수 당신이 그랬으면 당신이 책임져’ 이렇게도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것들이 백약이 무효가 됐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저도 ‘아니 도대체 내가 안 한 것을 가지고 이렇게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하고 역정을 내고 같이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피고인 1 교수가 너무나 화가 났기 때문에 우당탕 하고 뛰어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공소외 6 교수가 저한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공소외 6 교수가 ‘아무튼 피고인 2가 센 것은 알아줘야 돼. 내가 그렇게 살살 달래라고 해도 결국은 이렇게 했다’고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주146) ● 피고인 1은 당시의 심정과 관련하여 이 법정에서,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 제가 화가 난 이유가, 8월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는데, 미처 알아보지도 않은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또 하나는 공소외 6 교수에게 떠넘기고, 공소외 6 교수는 그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어, 뭐 이런 식으로’라고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제가 더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혼자 화가 난 것을 쏟아서 저런 이야기를 하고 ‘저 이 자리에 안 앉겠습니다. 가겠습니다.’하고 나와 버린 것입니다.”(주147) 라고 진술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을 안했는데, 그 후에 문제가 좀 뭐가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피고인 2가 2010. 8. 19.경 또는 20.경 교육감 집무실에 이어 두 번 다 강하게 부인을 했기 때문이다.’ 라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하였다.
아니었습니다. ”
뛰쳐나갔습니다. ”
“살벌했습니다.”
납니다. ”
것입니다. ”
피고인 2는 그 직후 2010. 10. 24.부터 2010. 11. 1.까지 스웨덴과 핀란드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피고인 2는 2010. 10.경부터 2010. 11.경 사이에 종로구 인사동 부근의 호프집과 종로구 화동의 찻집 등지에서 몇 차례 피고인 3을 만나 그에게 ‘후보 단일화 당시 공소외 5가 피고인 1에게 금전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해 준 일로 인하여 오해를 받고 있고, 그 오해로 인하여 피고인 1이 격앙되어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공소외 7과 함께 피고인 1을 좀 만나달라.’고 부탁하였다. 피고인 2는 그즈음 공소외 7에게도 피고인 3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당시 공소외 7은 공소외 5도 함께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지만 피고인 2는 ‘공소외 5는 함께 가지 마라.’는 취지로 말했다.
● 당시 피고인 3에게 피고인 1을 만나달라고 부탁한 취지와 관련하여 피고인 2는 검찰 및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피고인 1이 2010. 8. 19.경 또는 20.경 교육감 집무실에서 한 행동 등의 이유를 알게 된 후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피고인 2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 한 것이라는 피고인 1의 오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긴 나에 대한(피고인 2에 대한) 원망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하였다. “저는 일차적으로 피고인 1 교수의 오해와 불신, 원망을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굉장히 심각한 갈등관계죠. 그래서 피스메이킹(peace making)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기본이.”(주148) ●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법철학자이자 헌법학자로서 평소 법의 진정한 목적은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평화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평소의 철학대로 피고인 1과 피고인 2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고 둘의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기 위해 이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하였다. “사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저는 처음부터 피고인 2 교육감과 피고인 1 교수의 틀어진 사이에 대해서 부탁을 받고 들어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비록 법관도 아니지만 스스로 자임하기를 ‘저는 화해자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에이디알(ADR)이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저는 화해자로 들어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양 당사자의 가운데에 서게 되었습니다.”(주149)
기본이. ”
되었습니다. ”
피고인 3과 공소외 7은 2011. 11. 17. 및 2011. 11. 19. 두 차례에 걸쳐 ●●●●대학교 부근의 ‘▷▷’이라는 식당에서 피고인 1을 만났다. 피고인 3은 그 자리에서 피고인 1을 처음 만났는데, 당시 공소외 7은 피고인 1에게 피고인 3을 피고인 2의 오랜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이 분(피고인 3)한테 이야기 하시는 것은 피고인 2 교육감께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만큼 신뢰가 있는 분입니다.”라고 말하였다 .
두 차례의 만남에서 피고인 1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와 관련하여 자신이 보고 받은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 사건 선거 당시 자신이 지출한 비용과 관련한 증빙자료들(견적서, 영수증 등)과 신문 기사를 보여주며 ‘교수 신분으로 말이 아니다.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피고인 2가 위 합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나도 그냥 있지 않겠다.’, ‘합의한 돈은 7억 원이지만 내심으로는 5억 원 정도만 받을 생각이었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 3과 공소외 7은 한편으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는 피고인 2가 승인한 바 없고 그 합의 사실을 알지도 못하였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또 한편으로 앞으로 피고인 1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피고인 1은 2010. 11. 17.의 만남 당시 소형 녹음기를 이용하여 대화내용을 몰래 녹음하려 시도하였으나 제대로 녹음되지 아니하여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 .
● 피고인 1은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피고인 3과 공소외 7이 처음에 왔을 때는 안 믿었습니다. 제가 ‘또 나를 따돌리려고 나타난 것이냐’고 불신을 표명하면서 신문을 보여주면서 ‘한번 읽어봐라. 내가 그 심정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공소외 4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굉장히 깊었습니다. 처음에 공소외 7 교수가 찾아왔을 때 공소외 4가 1, 000 ~ 2, 000만 원을 구해서 보태주지도 않고, 도망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소외 6 교수를 찾아가서 보증을 선다고 했으면서 무책임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때 까지만 해도 공소외 12가 단일화 협상 당사자인줄 알았습니다. 공소외 12는 계속 말을 돌린다고 하였고, 피고인 2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른다고 해서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그때 공소외 7 교수가 ‘단일화에 관여한 사람들이 너무 무책임하다. 제가 그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2, 000 ~ 3, 000만 원 정도는 제가 빌려 줄 수도 있었는데’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소외 7은 마치 저의 급한 불을 꺼줄 것처럼 이야기를 했고, 피고인 3 교수는 점잖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늦춰주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만났습니다. 만나서 보니까 사람들이 좋았습니다.”(주153) ● 한편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에 기한 합의금을 받는 것은 2010. 12.경 포기한 것인가.’ 라는 취지의 검사의 질문에 대하여 “제가 합의금으로 받는 것을 포기한 것은 그때가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제가 믿지도 않았고요. 구체적인 시기는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주154) “액수도 전액을 받는 것을 포기하였고요.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일화 명목으로 돈을 달라는 것도 포기하였습니다. 합의된 것이 아니라고 하니까요. 저로서는 어떻게든 돈을 받으면 되었습니다.”(주155) 라고 답변하고, “피고인은 피고인 3 등과의 2차례의 만남(2010. 11. 17.자 및 2010. 11. 19.자 만남)을 통해 피고인 2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린 것이 아닌가요.” 라는 피고인 2 변호인의 질문에 대하여는 “그때는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11월 중순에 제가 자리를 뛰쳐나오고 난 후에 그런 생각도 조금 들었고, 피고인 3과 공소외 7이 와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실제로 약속을 한 공소외 4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저를 따돌리고 사라져 버렸잖아요. 10월 중순에 “너 멋대로 해라.”고 하고 가버렸고, 나중에 이분들이 나타나고 식사할 때만 나타난 것이거든요. 그때도 잠깐 왔다가 가버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제가 다는 믿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진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사실이 그렇든지 아니든 간에 제가 져주어야지 하는 말의 의미는 믿어주어야지 하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피고인 1 교수를 대한 사람들과 다르다. 우리를 믿어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보니까 빈말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져 주어야지’라는 말의 의미는 믿어주어야지 하는 의미입니다. 그다음에 만나보니까 피고인 3 교수는 그런 분이 아닌 것 같아서 믿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가졌고, 완벽하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후에 공소외 5도 만나고 피고인 2 교육감도 만나면서 서서히 이렇게 됐고, 나중에 1월에 피고인 3 교수가 돈을 마련한다고 할 때는 없는 것으로 저 스스로 단념을 한 것입니다. 포기하고 그렇게 생각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도 ‘그것이 100% 없었구나.’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이 되고, 저는 우선 급했으니까 저를 도와주겠다고 오셨고, 저를 계속 만났고,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처음에는 액수 가지고 그런 일이 있었지만 결국 받게 된 것입니다.”(주156) 라고 답변하였으며, “피고인은 2010. 11. 19. 이후 그 누구에게도 ‘후보단일화 약속을 이행하라.’는 말을 한 바가 없지요.” 라고 피고인 1 변호인의 질문에 대하여도 재차 “예. 다만 그때 제가 100% 단일화 약속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그 후에 지나면서 제가 정리를 한 것입니다.”(주157) 라고 답변한 바 있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취지로 설명하였다.(주158) ‘2010. 11. 17.경과 2010. 11. 19.경 피고인 1과의 두 차례 만남에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에 피고인 2가 관여된 바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어도 피고인 1이 계속 합의 사실을 반복해서 이야기 하길래 일단 경청하면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피고인 1이 선거비용 관련 서류들을 보여주기는 했는데 무슨 내용인지 알 수도 없었고 관심도 안 두었습니다.’ ‘두 차례 만남을 통해 피고인 1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관계 회복과 경제적 곤궁 해결이라는 두 가지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았습니다. ”
없습니다. ”
되었습니다. ”
것입니다. ”
것입니다. ”
설명하였다.
한편, 이 사건에서 피고인 1의 당시의 재무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들은 제출되지 않았다. 다만 피고인 1의 이 법정 및 검찰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피고인 1은 합계 12억 원 정도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고, 그 중 5억 원 정도의 채무가 이 사건 선거 당시 사용한 선거비용으로 인하여 생긴 채무였으며, 위 12억 원의 총 채무 중 지인과 가족들로부터 금전을 차용하면서 생긴 채무를 제외하고 이자를 부담하고 있던 채무는 7억 내지 8억 원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
피고인 3은 피고인 1과의 위 2010. 11. 19.자 만남 다음날인 2010. 11. 20.경 종로구 화동에 있는 찻집에서 피고인 2를 만나 피고인 1에게 금전을 제공하는 것이 합당한 상황이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피고인 3은 그때부터 2010. 12.경까지 피고인 2에게 수차례 자신이 생각하는 ‘피고인 1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한편, 공소외 7은 피고인 3과는 별도로 그즈음부터 피고인 1과 만날 때마다 꾸준히 피고인 2에게 피고인 1과의 만남에 관한 상황들을 보고하였는데, 피고인 3의 위와 같은 입장과는 반대로 ‘피고인 1에게 절대로 금전을 제공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다.’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 피고인 3은 당시 자신의 판단과 관련하여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제가 피고인 1 교수에게 돈이 급한 분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피고인 1 교수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교수 신분에 교육감을 출마하신 분이 돈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얼마나 싫었겠느냐 싶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끄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보는 저의 마음도 항상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마음이 저 스스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 마음속의 긍휼이 아닌가 지금 생각이 됩니다. 긍휼이라는 것은 영어로 ‘Mercy’인데요. 긍휼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마음에서 시작되었고요, 그 다음부터는 약간의 이성적인 판단이 뒤 따라온 것이죠. 그래서 여러 가지 생각과 상상, 판단이 뒤 따라왔습니다. 돌아가시면 어쩌나, 특히 유서를 써놓고 돌아가시면 어쩌나. 그 사회적 파장과 수습 불가능, 그 가운데서 피고인 2 교육감은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교육 개혁은 와해되고 정지되는 상상을 다 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 긍정적으로 피고인 1 교수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사회적 능력을 수용해야 한다고 판단되었고, 말하자면 미래에 대한 투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종합적인 판단으로 돈의 지급에 대한 이유가 결정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처음에 역시 마음이 움직인 것은 대가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주160) “피고인 1 교수가 정말 화가 났을 때는 ‘진보의 탈을 쓴 부도덕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터트리겠다는 분위기까지 있었습니다. 저는 ‘유서를 써놓고 돌아가시면 어떻게 되나’라는 상상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러면 정말 수습이 불가능 하겠구나. 피고인 2 교육감은 정말 일을 못 하겠구나. 어떻게 거두어드릴 수도 없고, 언론은 보나마나 부도덕한 교육감으로 몰아세울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잠재우겠습니까. 저의 임무는 피고인 2 교육감이 교육개혁에 충실하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제가 해야 될 화해의 일입니다. 저는 ‘피고인 1 교수가 유서를 써놓고 돌아가신다면 완전히 망하는 것이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주161) ● 한편 피고인 2는 당시 공소외 7이 제시한 의견과 관련하여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공소외 7 교수는 ‘아무리 나쁜 놈 소리를 듣더라도 지원을 해드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게 정말 인정에 휘둘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이고 어차피 잘못된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공소시효 같은 것 가지고도 ‘공소시효 전에는 절대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또 공소시효가 지나면 이런 것 다 단념하게 되어 있다, 사실은. 왜냐하면 이런 건 다 잘못이니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공소외 7 교수는 또 ‘교육감직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일로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소외 7 교수는 피고인 3 교수와는 180도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서울교육을 위하고, 또 저를 위하는 마음에서 말하는 것은 같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공소외 7도 피고인 1 교수가 정말 힘들기는 힘든 모양이라는 말은 했습니다. 공소외 7 교수도 ‘피고인 1 교수가 선거관련 청구서류 등을 잔뜩 가져다가 보여주었다. 돈이 있으면 자기라도 돕고 싶었다’라는 말은 물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라도 돈을 주면 큰 일 납니다.’라고 했습니다. 공소외 7 교수가 펄펄 뛰었어요. ‘그 오해를 이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주162) ● 공소외 7 역시 이 법원 및 검찰에서 전체적으로 ‘피고인 3으로부터 피고인 1에게 돈을 지원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피고인 2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고, 나(공소외 7) 스스로도 피고인 2에게 안된다고 말했다. 피고인 2의 반응 역시 처음에는 줄 수도 없고 주어서도 안된다는 입장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주163) ● 한편 공소시효와 관련하여 공소장에는 ‘피고인 2가 피고인 1과의 사전 합의를 전제로 그 이행시기를 공소시효 만료일 이후로 지연시키기 위하여 금원 지급 시기를 조율하였다.’고 기재되어 있고, 검사도 의견서를 통해 ‘피고인 2가 이미 피고인 1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에서 단지 합의금 지급 시기를 공소시효 만료일 이후로 미룰 목적으로 피고인 3을 피고인 1에게 보내 피고인 1을 달래며 시간을 지연시킨 것이다.’는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주164) ● 이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공소시효 자체는 잘 알고 있었고 피고인 1이 그 안에 소란을 피울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했으며, 그 때문에 불안했던 것도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검사가 주장하듯이 합의금을 주기로 마음먹고 공소시효 만료일을 기다린 것은 아니다. 합의금을 주기로 마음먹게 된 경위는 피고인 3의 설득 때문이었다. 피고인 3이 피고인 2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은 피고인 1을 만나고 돌아온 2010. 11. 20.경이었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피고인 2의 구체적인 진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공소시효라는 것은 피고인 1 교수의 소란시효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피고인 1 교수가 기자회견을 한다고 흘러 다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른바 자폭시효인데요. 저는 공소시효에 대해서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주165) “저는 공소외 7 교수하고는 (공소시효)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공소시효 기간은 특별히 위험한 기간입니다. 당연히 공소시효 기간 안에 정말 피고인 1 교수가 기자회견을 한다면 그 당시에 지금 같이 되었겠죠.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오해라는 것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해의 뿌리 같은 것이 아무리 박약하다고 할지라도 5. 19.에 세분 간의 합의 같은 것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렇게 된단 말이죠.”(주166) “12. 2.까지 공소시효 기간. 제가 아까 말씀드린 소란시효 기간 중에는 정말 피고인 1 교수와 오해와 원망 같은 것, 불신 같은 것이 해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인격적인 만남이 없으면 사실은 굉장히 불안합니다.”(주167) ● 위와 같은 검사와 피고인 2의 주장 대립과 관련하여, 이 법원에서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 i) 내지 v)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공소장 기재 부분과 검사의 이 부분 주장은 ‘사건의 선후관계’라는 측면에서 이 사건의 사실관계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 2의 해명에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된다. i) 피고인 2가 뒤늦게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알게 되어 피고인 3과 공소외 7에게 피고인 1을 만나달라고 한 이후 시점인 2010. 11. 하순경이 될 때까지도 피고인 1에게 금원을 제공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피고인 3과 공소외 7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고, 더군다나 공소외 7은 피고인 2가 자신의 의견을 듣고 처음에는 ‘당연히 돈을 줄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ii) 피고인 2가 만약 기왕 금전을 지급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면, ㉠ 공소외 12, 공소외 5 등과 같이 피고인 1의 이해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선거 전문가 또는 이 사건의 경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을 피고인 1에게 보내서 ‘돈을 지급할 테니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달라’라는 말을 전하는 확실한 방법을 택하지 아니하고, ㉡ 굳이 피고인 3과 같이 공직선거에 문외한이고 협상에 익숙하지 아니한 대학교수를 보내면서 막연히 ‘오해와 갈등을 풀고 화해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불확실한 방법을 택하였는지 그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아니한다. iii) 애초에, 피고인 2가 공소외 7과 공소시효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시점 자체가 공소시효 만료일로부터 불과 10여 일 전이고(2010. 11. 17.경 이후이므로 아무리 빨라도 15일 전이다), 당시 피고인 2는 피고인 1에게 현금을 지급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아니하였다. iv) 피고인 2가 처인 공소외 8에게 현금을 모아두라고 처음 말한 시점도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0. 12.경으로 인정된다. 나아가 실제로 피고인 1에게 현금이 건네지기 시작한 시점은 그보다 2개월이 더 지난 2011. 2. 19.경이어서, 공소시효 만료일로부터 2개월 반 이상의 기간이 지난 후이다. 이상에서 본 제반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에서 공소시효가 가지는 의미와 관련하여는 ‘피고인 2와 피고인 3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되어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인식한 상태에서, 2010. 12.경부터 2011. 4.경까지 현금 2억 원을 마련하여 피고인 1에게 교부하였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피고인 3도 이 법정에서 ‘가정적인 이야기이지만, 만약 2010. 12.경 당시에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피고인 2에게 금전을 지급하자는 이야기를 꺼냈을지 잘 모르겠다.’는 취지로 진술함으로써 이에 대하여는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고 보인다. 피고인 3은 2011. 8. 18.경 피고인 1을 만난 자리에서도 ‘공소시효가 끝났으니 문제될 것 없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하였다.
들었습니다. ”
들었습니다. ”
하였습니다. ”
있다.
있다.
것입니다. ”
말이죠. ”
불안합니다. ”
피고인 3은 위 2010. 11. 19.자 만남 후 공소외 5를 찾아가 두 차례에 걸쳐 피고인 1을 만난 사실을 말해주고,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경위와 내용에 대하여 간략하게 물은 뒤, 피고인 3과 함께 피고인 1을 만나달라고 부탁하였다. 공소외 5는 처음에는 피고인 3의 위 부탁을 거절하다가 결국 함께 피고인 1을 만나기로 하였다.
피고인 3의 주선으로 2010. 11. 23. ‘▷▷’이라는 식당에서 또 한 차례의 모임이 있었다. 위 모임에는 피고인 1 측에서는 피고인 1과 공소외 4, 공소외 18이, 피고인 2 측에서는 피고인 3과 공소외 5가 참석하였다.
위 모임에서 피고인 1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또는 자신의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하여 직접 언급하지 아니하였고, 위 참석자들은 서로 간에 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한편, 위 자리에 피고인 1과 함께 온 공소외 18은 대화 도중 피고인 3 등에게 ‘약속한 것을 빨리 이행해달라.’라는 취지의 언급을 하였다. 이에 피고인 3과 공소외 7은 ‘알아서 할 것이니까 염려말라.’는 취지로 화답하였다. 당시 피고인 1은 피고인 2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으나, 공소외 5는 이에 대하여 피고인 2의 평소 성격에서 비롯된 인한 오해라는 취지로 말하며 피고인 1을 달래주었다 .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공소외 18 선배는 구체적인 액수나 내용을 이야기하지는 않고, 디제이피 단일화를 하는데 자기가 심부름 삼아 관여를 했다는 예를 들면서 ‘신의를 지켜야지’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주169) “(공소외 18의 이야기에 대하여) ‘피고인 1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돕는 방안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저를 찾아 왔다.’고 했습니다. 3 교수는 어쩌다가 한 말씀하시고, 공소외 7이 주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합니다.”(주170) ● 같은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공소외 18이 다른 얘기 도중에 간단하게 ‘약속을 한 것이 있으면 책임을 지셔야죠’라고 끼어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본론도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얼른 가볍게 응수를 한 것입니다. ‘예. 염려마세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염려하지 마세요’라는 정도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화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주171)
했습니다. ”
기억합니다. ”
돌아갔습니다. ”
위 2010. 11. 23.자 모임 이후 피고인 1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판단한 피고인 3과 공소외 5는 각자 피고인 2를 설득하여 피고인 2와 피고인 1이 직접 만나는 모임을 주선하였다.
이에 따라 2010. 11. 28. 서대문 부근의 참치집에서 피고인 2와 피고인 1, 피고인 3과 공소외 5가 함께 만났다. 피고인 2와 피고인 1이 함께 술자리를 가진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피고인 1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또는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보니까 공소외 31씨나 등등 그러니까 저희가 잘 모르는 세대가 77, 78학번 세대와 제가 사교관계가 없습니다. (피고인 1이) 그 시점에 주역들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굉장히 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을 들어보니까 아주 저희하고는 조금 다를 수가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라는 것을 실제로 느꼈고 공소외 5도 그렇게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피고인 2가 이런 분을 못 준다고 하면 이것은 마이너스이고 이것은 정말 문제다’라는 것을 저희가 실제로 공감했고 그래서 ‘피고인 2에게 확실하게 이야기하자’ 해서 다음 자리를 만들게 됐습니다.”(주172) “28일 자리가 만들어져서 오자마자 원래 피고인 2 선생은 워낙 소셜하니까 와서 잘했어요. 잘 해주니까 아까 그런 이야기가... 다독이고 좋은 후배다 라고 해서 시도 읊고 눈까지 내리고 해서 정말 좋게 헤어지는 자리였습니다. 피고인 1 선생은 계속해서 돈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주173) 공소외 5 역시 이 법원에서 위와 동일한 취지로 진술하였다.(주174) ● 이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상세히 진술하였다. “피고인 3 교수로부터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솔직히 좀 당기지는 않는다. 만에 하나라도 피고인 1 교수한테 또 막말을 들으면 어떻게 하냐. 교육감직의 권위가 손상되는 자리에 나는 가 있을 수가 없다. 나는 가고 싶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3 교수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11. 23. 모임이 굉장히 좋았고, 공소외 5 선생이 이상하게 피고인 1 교수와 금세 친해졌다. 그래서 아주 좋은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와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공소외 5도 똑같이 저한테 그런 식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보장이랄까 하는 것을 받고 나가게 됐습니다.”(주175) “11. 28.에 눈이 내리는 가운데 얼마나 멋있습니까. 피고인 1 교수가 멋있지 않습니까. 피고인 1 교수가 시를 암송하는 목소리와 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피고인 1 교수는 그 긴 시를 눈 하나 깜짝 않고 암송을 했습니다. 그 밖의 시들도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제가 당선되고 나서 피고인 1 교수와 술을 한잔 한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피고인 1 교수를 껄끄럽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까지 피고인 1 교수는 저에게 채권이라도 있는 사람인 것처럼 그런 행세를 했습니다. 저는 아우처럼 돌봐 주고 싶었는데 피고인 1 교수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피고인 진술 때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그리고 검찰 조서에서도 이미 상당 부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런 상황이라 피고인 1 교수라는 분에게 미안한 감정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워낙 훌륭한 이력을 갖고 있는 분인데 제가 나타나면서 오랫동안 준비한 꿈을 접어야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은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좋은 면을 보고 정말 형제같이 수용하게 되었습니다.”(주176) “저는 5. 19. 동서간의 합의로 말미암아서 비롯된 오해와 원망이 이날로 해소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마음속에서 피고인 1 교수를 정말 수용을 했습니다. ‘굉장히 멋있는 분이다, 너무 만시지탄이라고, 이런 것을 모르고 인간적인 교감을 하지 못하고 그동안 껄끄러운 자리만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주177) ● 같은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28일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공소외 5가 ‘알고 봤더니 피고인 1 교수가 괜찮은 사람이더라. 피고인 1 교수는 형님 3명을 얻은 거야. 그리고 우리는 동생 하나 얻은 것이고.’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건배 하자고 했고, 악수하자고 해서 악수했고, 피고인 2 교육감과 끌어안기도 했습니다.”(주178)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날 눈이 왔는데, 그 시(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이라는 시)에 보면 다는 아니지만 눈이 중요한 시의 소재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눈이 오는데, 제가 옛날에 시인이 되려고 해서 시를 조금 아는데, 술을 많이 마시고 분위기도 좋으니까 시 한수 읊을까요.’라고 하니까 ‘아, 그래.’라고 해서 읊었습니다.”(주179)(주180)
됐습니다. ”
않았습니다. ”
진술하였다.
됐습니다. ”
되었습니다. ”
생각하였습니다. ”
했습니다. ”
읊었습니다. ”
한편, 피고인 3은 2010. 11. 17.경부터 2010. 12. 2.경 사이에 공소외 5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피고인 1에게 금전을 교부하는 문제’에 대하여 상의하였는데, 당시 공소외 5는 공소시효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공소시효가 완성된 이후에 금전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는 취지로 말해 주었다.
●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당시의 자신의 의도와 관련하여, 전체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 공소시효에 초미의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 ‘실정법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피고인 1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제가 공소외 5한테 ‘돈을 도와줘도 괜찮겠느냐’라고 질문을 했는데 왜냐하면 공소외 5의 종합적인 지식에 대한 제가 컨설팅을 한 것입니다. 공소외 5는 선거판에서 계속 있었고, 변호사만 아닐 뿐이지 법률지식이 정말 변호사 이상으로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 학원에서도 형법 강의도 할 정도로 굉장히 실력이 좋습니다. 그래서 공소외 5의 법률지식을 들으면 거의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제가 신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소외 5는 선거판에서 활동했던 실력 좋은 친구, 또 박약하나마 합의도 했었던 그런 친구에게 종합적으로 이런 돈을 지원해줘도 상관없느냐 라고 하는 종합판단을 의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공소외 5가 “도와줘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가급적이면 늦게 주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주181) “제가 ‘보훈아, 피고인 1 선생에게 돈을 줘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았는데, (공소외 5가) ‘괜찮죠. 그렇지만 가급적으로 늦게 줘라.’고 해서 ‘왜 늦게 주냐.’고 했더니 공소외 5가 공소시효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제가 ‘공소시효 얼만데.’라고 했더니 공소외 5가 ‘6개월’이라고 했고 제가 ‘그것이 언제 끝나는데’라고 하니까 공소외 5가 ‘12. 2.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공소외 5가 선거판에 있었고, 공식법률가는 아니더라도 법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서 무조건 믿어야 되는 자료로 알고 있었습니다.”(주182) ● 반면, 공소외 5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3과 위와 같은 대화를 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바 있다.
했습니다. ”
있었습니다. ”
공소외 5가 피고인 1을 자신의 목공예방으로 초대하여 2010. 12. 4. 피고인 1과 피고인 3, 공소외 5가 ▼▼▼역에서 만나 (이하 생략) 부근에 있는 공소외 5의 목공예방을 둘러보고 그곳의 목공예 교사와 함께 그 인근의 ‘⊙⊙⊙’라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
피고인 3은 2010. 12. 4.부터 2010. 12. 6.경 사이에 공소외 5에게 전화를 걸어 ‘피고인 1에게 건네 줄 돈의 금액과 시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해달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공소외 5는 ‘피고인 2가 나(공소외 5)에게 시키는 것인지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피고인 3은 그러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공소외 5에게 위와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을 몇 차례 더 부탁하면서 “임무를 무사히 완수해서 기쁘다. 나는 이제 손 뗐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피고인 3과 공소외 5는 이렇게 피고인 1에게 건네 줄 돈의 금액과 시기를 조율하는 문제를 두고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2010. 12. 6. 과천의 ‘◀◀◀◀’이라는 식당에서 함께 만나기도 하였으나 위 문제에 대하여 별다른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공소외 5는 이 날 이후 피고인 1에게 피고인 2가 마련한 돈이 전달되기 시작할 때까지 피고인 1을 다시 만난 사실이 없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5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3 교수가 피고인 1 교수를 도와야 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기와 방법을 조율하여 달라고 피고인 3이 저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주184) “피고인 3 교수가 ‘피고인 1 교수를 도와야 되겠다. 그 방법을 네가 좀 조율해 봐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제가 ‘피고인 2 교육감에게 물어봐라.’고 했습니다. 검찰에서는 잘못 저지른 사람이 화를 낸다고 했는데, 저는 저 나름대로 화가 났죠. 이런 것을 나와 의논해서 해야 되는데 그렇게 안해서요. 피고인 3 교수가 저와 2번 만났는데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혼자 피고인 1 교수를 만나고 나서 저에게 도와 달라고 해서 그때부터 화가 났습니다. 지금까지도 화가 나 있습니다. 이해가 아직도 안 됩니다. 그때 ‘피고인 1 교수를 만났는데 여기까지는 잘 됐는데 더 나아가서 좀 조율해 봐라.’고 해서 제가 ‘나는 피고인 2 교육감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다. 피고인 2 교육감에게 물어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있다가 피고인 3이 전화가 와서 제가 ‘(피고인 2에게) 물어 봤냐.’고 하니까 대답하지 않고 ‘그냥 네가 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가지고 옥신각신을 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언성도 높아졌고, 화도 냈습니다. 제가 ‘물어보면 될 걸.’이라고 하니까 피고인 3이 ‘네가 해.’라고 했습니다. 30여 차례 통화를 하고 나서 저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주185) ● 같은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문자메시지의 내용 중에) 임무가 끝났다는 말은 피고인 1의 오해와 원망이 어느 정도 풀어졌으니 일단 피고인 3이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이고, 돈 문제를 공소외 5에게 처리하라고 한 이유는 피고인 2로부터 질타를 받은 공소외 5가 속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피고인 2와 공소외 5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켜 줄 의도였다.’라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저한테는 피고인 2 교수와 관계가 회복돼야 할 사람이 피고인 1 선생이었지만 사실은 공소외 5와 피고인 2 관계회복도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피고인 2는 일이 바빠서 알 턱이 없겠지만 저로 보아서는 이미 공소외 5는 되게 상처를 받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친구지만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공소외 5는 ‘왜 저한테 상의도 없이 나한테 맡겼느냐’ 그것은 논리적으로는 맞는 소리이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저를 왜 소외시켰느냐’라는 불만으로 저는 들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마음속으로는 ‘너보다는 나하고 더 친하니까 그렇지’ 이건데 그렇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고 분명히 제가 옆에서 보면 공소외 5는(이때 피고인 3은 감정이 북받쳐서 말문이 막힌다고 잠시 진술을 중단하다) 선거과정 중에 정말 훌륭하게 회계처리를 완벽하게 해서 돈 부정이 많다는 선거판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깨끗하게 끝낸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만 해도 정말 훌륭하게 피고인 2 선생을 도와주었는데 그러면 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아도 한참 받아야 될 사람이 어쨌든 알지도 못한 상황에서... 요즈음 이야기가 나오는 공소외 4와의 그 얘기 때문에 또 결정적으로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돼서 정말 속상했을 것 같습니다. 피고인 2 선생한테 완전히... 피고인 2 선생도 그거에 대해서 질타를 가할 수 있는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미루어보면 공소외 5가 자기가 완전히 신뢰를 잃고 라고 얼마나 속상했겠느냐, 일은 일대로 골 빠지게 3개월 정도 이상을 집에도 안 가고 일을 해주고, 이제 욕은 욕대로 먹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상할까... 그런데 피고인 2는 거기에다 대충 저에게 욕은 안 하지만 사실상 저에게 넘어온 것이지 않습니까? 이게... 저로서는 사실은 좀 미안하죠. 미안하면서도 이 관계를 또 회복을 시켜줘야 되겠다는 것이 저의 임무였습니다.”(주186) “내 임무는 일단 사회적인 관계회복은 끝났는데 또 하나는 경제부분으로 해야 될 판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공소외 5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소외 5는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저한테 받은 꼴이 됐는데 저는 이 돈 제안에 대해서 이 돈은 당연히 지금, 도와주는 돈입니다. 도와주는 돈이기 때문에 실제로 선행입니다. 선행이지만 이것이 저도 사회과학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알죠. 이게 굉장히 궂은 일이 섞여있는 선행이라는 것을 제가 알고요. 왜냐하면 이것이 돈을 전달해야 될 일이고 돈을 만들어야 될 일이고 또 혹시라도 정말 드러나면 굉장히 많은 오해 같은 것에 휘말릴 수도 있고 하는 궂은 성격의 선행이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저는 선행이라는 것은 틀림없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친구인 공소외 5한테는 선행이라는 것이 저한테 강하게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궂은 일이라 할지라도 선행이니까 ‘네가 마무리를 짓고 잘 도와드려서 피고인 2한테 얼굴 좀 세워라’라는 취지로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주187) “공소외 5는 영문을 모르니까 막 화내는데 저는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꺼낼 소재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약간의 겉도는 이야기였지 싸운 것은 아닙니다. 싸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다가 ‘공소외 5야 또 보자’ 하고 헤어진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공소외 5는 이 일과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일이 없어졌고, 말하자면 퇴장이 된 것입니다.”(주188)
하였습니다. ”
왔습니다. ”
임무였습니다. ”
것입니다. ”
것입니다. ”
2010. 12. 초순경 ‘공소외 11 목사와 함께 만나자.’는 피고인 1의 제안으로 피고인 1, 피고인 3, 공소외 7과 공소외 11이 함께 만났다. 그 자리에서 공소외 11은, 피고인 1에게는 ‘금전 지급 약속을 주장하지 말라.’, ‘채권의식을 버려라.’라는 취지로, 그리고 공소외 7에게는 ‘피고인 1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피고인 2, 공소외 7 등이 십시일반해서 도와라.’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4)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교부하기까지의 과정
피고인 3은 2010. 12. 초순경 피고인 2에게 다시 한번 ‘피고인 1에게 돈을 주자.’고 하였다. 피고인 2는 피고인 3의 말에 동의한다는 명시적인 의사를 밝힌 뒤, 그즈음 그의 처인 공소외 8에게 피고인 1과 관련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현금을 조금씩 인출하여 모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공소외 8은 피고인 2에게 자신이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 1억 원 정도라고 알려주었다.
피고인 2의 이 법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2010. 11.경부터 2010. 12.경 사이에 ‘피고인 1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피고인 3이 피고인 2를 설득한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피고인 1이 경제적으로 곤궁 상태에 있다는 내용 ● 이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11. 17.과 11. 19. 피고인 3 교수가 피고인 1 교수를 두 차례 만나고 나서 피고인 1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우선 ‘피고인 1 교수가 무슨 이만한 서류를 들고 와서 빚 문서 같은 것을 많이 보여주더라. 선거과정에서 생긴 빚 문서 같은 것들을 잔뜩 들고 와서 이렇게 보여주는데, 우리가 그것을 볼 경황은 아니고 아무튼 코앞까지 들이대더라. 그리고 어렵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하고 저한테는 죽고 싶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하더라’라고 제가 들었습니다. 또 ‘힘들긴 굉장히 힘든 모양이다. 카드 돌려막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내 숨이 탁 막히더라.’라고 했습니다. 피고인 3 교수 본인이 카드 돌려막기 경험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 카드 돌려막기라는 것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저한테 그때부터 해서 저도 그것이 입력이 됐습니다.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숨이 컥컥 막히고 숨 넘어가는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한테 ‘이 양반 워낙 상실감이나 박탈감이 크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느껴서 정말 자살할까 겁난다’라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면 진짜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건데’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주189) “(피고인 3이) ‘(피고인 1이) 극단적 선택을 해서 유서를 써놓고 어떻게 되면 도대체 네 꼴은 뭐가 되고 서울교육은 뭐가 되겠느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주190) ㉡ 피고인 1과의 진정한 화해, 지속가능한 화해를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는 내용 ● 이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피고인 3 교수는 아주 확고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피고인 3 교수는 자기희생적인 요소라든가 물질의 나눔 같은 것이 없이 진정한 갈등의 치유 같은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을 하고, 또 그런 실천을 쭉 해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피고인 3 교수의 입장에서 그 다음부터 저하고도 그런 이야기들을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 상황들은 진행 중이었습니다.”(주191) ●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당연히 다른 분들은 이렇게 화해가 됐으면 된 것 아니냐, 돈을 안 줘도 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할지 모르지만 저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사실은 우리로 보아서는 좋은 선후배가 됐고 기분도 좋다고 그런 관계가 됐지만 물질적으로 서로 나누지 않으면 이게 깊이 있는 관계회복은 안 된다, 그것은 좀 지나가다보면 또 안 된다는 것을 삶의 경험 속에서나 이런 것을 철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좋은 동생을 얻었다, 좋은 형을 얻었다, 좋은 선배, 후배 이야기를 했지만 어려움에 처한 것을 외면하고 더 갈 수는 없는 것이죠. 거기까지 해야 정말 선후배이고, 형제가 되는 것을 저는 알기 때문에 경제적 지원 이야기를 생각한 것입니다.”(주192) ㉢ 피고인 1을 포용하는 것이 교육개혁을 위한 투자라는 내용 ● 이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피고인 3이) 그런 취지의 이야기는 여러 번 했습니다. 그것은 ‘그 양반 실력도 있어 보이고 네트워크도 있어 보이더라. 그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적극적인 협력을 받지 않고 서울교육을 어떻게 바꾸겠니?’ 이런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피고인 1 교수가 괜찮은 사람이다. 오해가 풀어지는 대로 확 껴안아서 좀 힘 있게 진정한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받아야 된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것을 안 하면 제가 굉장히 협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주193) ●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사회적으로 일어날 파장 또 무엇보다도 피고인 2 교육감이 교육개혁 및 사회개혁을 하는데 피고인 1의 인적 자원, 인맥을 활용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투자의 성격도 있었습니다.”(주194)
했습니다. ”
했습니다. ”
중이었습니다. ”
것입니다. ”
것입니다. ”
있었습니다. ”
● 피고인 2는 금전 지급 문제와 관련한 피고인 3과 공소외 7의 의견 차이, 그리고 자신이 피고인 3의 의견을 따르게 된 과정에 대하여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피고인 3 교수와 공소외 7 교수는 스타일이 조금 다릅니다. 공소외 7 교수는 굉장히 꼼꼼하고 어떻게 보면 현실주의자 면모도 강하고, 피고인 3 교수는 통이 크고 선이 굵으면서 이상주의자 면모가 강합니다. 이 두 사람이 내린 진단과 처방은 상이했지만 진단은 같았습니다. 정말 어려워하고 있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주195) “저는 일반적으로는 이것이 경제적 지원을 하게 될 경우에 사퇴대가(주196)나 이행약속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워낙 크기 때문에 공소외 7 교수가 제대로 그 위험을 진단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실 저희한테 불법인식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라는 의식이 확고했습니다. 그러면 좋은 일을 하는데 오해가 두려워서 하지 말 것이냐, 이것은 신중의 덕목이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상대적으로 그런 면에서 좀 자유롭고 낙관적인 스타일인데요. 그것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결국은 이런 일이 드러나도 그렇게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 아니냐, 그냥 소나기 같은 오해가 닥쳐 올 것이고, 지나갈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지 이렇게 제가 110일 넘게 구금되리라고까지는 생각을 안 했습니다. 왜냐하면 법 당국이 있으니까요. 제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또 주변상황들을 조사하면 웬만한 진실은 다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런 것에 대한 확신이 법에 대한 믿음이기도 한 것입니다.”(주197)
것이었습니다. ”
사퇴대가
것입니다. ”
한편, 피고인 2의 이 법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2010. 12.경 ‘피고인 1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처 공소외 8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피고인 2가 처한 상황을 설명한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공소외 5가 사고를 쳤다.’는 내용 ● 이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제가 ‘놀라지 말고 들어라.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는데 정말 놀라지 말고 들어라. 그리고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큰일은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10. 하순경에 공소외 5 선생과 공소외 4 선생이 선거비용 보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하면서 제가 여러 가지 경위들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파악하게 됐는지 그러니까 국정감사 때 모 국회의원의 방문부터 죽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주198) “얼마나 놀랠까 걱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도 최근에 알게 된 일인데 우리 공소외 5 선생이 이렇게 사고를 쳤다. 그런데 이것을 내가 어떤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주199) ㉡ 피고인 1이 경제적으로 곤궁 상태에 있다는 내용 ● 이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피고인 3 선생한테 부탁을 해서 피고인 1 교수쪽의 이야기를 상세히 들어봤는데 피고인 1 교수가 정말 어렵단다. 피고인 3 교수가 와서 아주 큰 걱정을 하더라 그리고 극단적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라. 이렇게 이야기할 때 저희 집사람이 흔들렸습니다. 극단적 선택 이야기할 때요. 저희 집사람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니겠네요’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주200) “선택지는 공소외 7 교수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리 딱해 보여도 두 눈을 딱 감는 방법이 하나 있고, 이것이 또 한쪽으로는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고 또 한쪽으로 피고인 3 교수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어려운 처지를 도와주는 그런 방법이 있다”(주201) ㉢ ‘피고인 1이 피고인 2의 말을 오해했다.’는 내용 ● 이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단일화 결정으로 말미암아 그런 물린 돈, 위약금 책임 이런 것 때문에 길바닥에 나앉을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는 진영이 부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나라도 나서서 사람들을 움직이겠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몇 차례 한 적이 있다’고 (처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주202) “‘제가 만약 오해의 빌미를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게 사는 법이 없다.’ 이런 이야기하고 비슷한 취지로 ‘그렇게 진영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느냐. 이런 이야기한 것이 오해의 빌미가 됐나보다’라는 이야기는 (처에게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했습니다.”(주203)
해주었습니다. ”
말하였습니다. )”
이야기했습니다. ”
있다”
했습니다. ”
했습니다. ”
피고인들은 2010. 12. 11. 예술의 전당에 있는 ‘◐◐◐’라는 식당에서 함께 만나 식사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피고인 2는 피고인 1에게 현재 서울시 교육감 자문기구를 설계하고 있다는 내용을 알려 주었다.
피고인 1은 2010. 12.경 수차례에 걸쳐 다른 동료 교수와 함께 공소외 7을 만나거나 피고인 3과 공소외 7을 함께 만났다. 당시 피고인 1은 피고인 3 및 공소외 7과 때로는 금전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친밀하게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좋은 관계로 지내는 것도 좋지만 경제적인 도움을 빨리 달라.’는 취지로 말하기도 하였다 .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7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피고인 3의 연구실에서) 피고인 1이 ‘그렇게 해서 우리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좋은데 사실은 내가 그것만 좋은 관계로 있을 수만은 없다. 내가 정말 사정이 어렵고, 압박이 계속 온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주205) ● 그밖에 공소외 7은 검찰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기도 하였다. “피고인 1 교수님이 ‘이제 얘기 좀 해야겠다. 지금은 술 먹고 이렇게 하고 있지만, 내가 술 먹으려고 만나는 건 아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줘야지 이런 걸 안해주면 정말 말이 되느냐.’라고 하소연하는 이야기를 하였고, ...(후략)”(주206) “그 때는(●●●●대학교 근처 모텔에서 아침에 피고인 1을 만났을 때는) 다른 때와 달리 저에게 막 화를 내면서 ‘이거, 어떻게든 해결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내가 지금 한계다.’라고 하여 제가 ‘미안합니다. 저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선생님이 얘기하는 거는 다 전했고 이제 저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오늘 전주 못가더라도 힘드신 것 얘기할게요.‘라고 하며 마지막에는 피고인 1 교수님 마음을 풀어드렸던 것 같습니다.”(주207)
하였습니다. ”(후략)”
같습니다. ”
한편 피고인 1과 피고인 3은 2010. 12. 6.경부터 2010. 12. 22.경 사이에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제공할 금전의 액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피고인 3은 처음에는 피고인 2의 이야기를 듣고 피고인 1에게 ‘1억 원도 쉽지 않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하였으나, 피고인 1로부터 ‘1억 원은 액수가 너무 적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후 다시 금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피고인 1은 ‘최소한 3억 원은 주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피고인 3은 ‘2억 원 이상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고, 피고인 1과 피고인 3 사이의 이러한 입장 차이는 마지막까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피고인 1은 피고인 3이 건네주는 돈을 우선 받기로 하고, 피고인 3에게 ‘연말까지 일부 금액이라도 먼저 달라.’고 부탁하였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피고인 3이) 12. 20.에 1억 원 정도를 이야기해서 제가 웃으면서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아예 제가 파산하고 말죠.’라고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주212) “그날 말했는지 몰라도 피고인 3 교수가 ‘도울 수 있는 것이 1억 원도 사실 쉽지 않다.’고 해서 황당했습니다. 1억 원 가지고는 아무 것도 안돼서 제가 ‘그것 가지고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주213) “3 교수가 2억 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제가 “그것 가지고는 파산할 것 같습니다. 3억 원은 돼야지.”라고 분명히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11. 17.이나 11. 19.에도 피고인 3 교수와 공소외 7 교수에게 “후보 단일화를 할 때, 공소외 4는 합의를 했다고 했지만 저는 그것을 다 받을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저의 빚을 갚으려면 한 4 ~ 5억 원 정도는 받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생각은 했습니다.”고 했습니다.”(주214) “제가 ‘그러면(2억 원이면) 제가 받기도 힘듭니다.’라고 저항이랄까, 볼멘소리를 하니까 피고인 3 교수가 ‘적다고 안 받을 것이냐, 우선 급한 불을 꺼야지.’라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몇 억 원이라고 확정을 안 한 상태에서 제가 미국을 가게 된 것입니다.”(주215) “제가 미국에 가면서 쫓기듯이 받았습니다. 저는 나중에 사정을 이야기해서 그쪽에서 돈을 더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3억 원 정도 이야기했으니까 1억 원은 안 되더라도 5, 000만 원이 됐든 3, 000만 원이 됐든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구속될 때까지도 그런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주216) ● 이 문제와 관련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피고인은 ‘2억 원을 주겠구나.’라고 생각했나요. 아니면 ‘3억 원을 주겠구나.’라고 생각했나요.”라는 검사의 질문에 대하여 “2억 원은 만든다고 했으니까 그것을 받고, 그 다음에 실제로 제가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조금 더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라고 답변하기도 하고, (주217) 또 한편으로는 “제가 3억 원 정도 이야기했으니까 1억 원은 안 되더라도 5, 000만 원이 됐든 3, 000만 원이 됐든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구속될 때까지도 그런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라고 진술한 바도 있다.(주218) ● 같은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피고인 1에게) ‘지금 급한 돈이 얼마냐’라고 해서 나온 것이 3억 원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2억 이상 안된다.’라고 하니까 ‘2억이면 파산입니다. 안됩니다’라고 피고인 1이 이야기하여 제가 ‘정말 맡긴 돈 같이 이야기하지 마시라’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합의금 이행으로 생각하면 절대 안 되기 때문에 맡긴 돈 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마시라고 하면서 이것은 우리가 그냥 주면 주는 것이지 적게 주니까 안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마시라는 그런 뜻으로 한 것인데요. (피고인 1는) ‘그래도 3억 원은 정말 필요합니다’라고 계속 이야기를 했고 이미 제 머리속에는 두 번째(2010. 11. 19.) 만날 때까지 그것이(경제적 곤궁이) 입력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3억 원이라는 것은 굉장히 필요한 돈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12. 22.에 ‘절대 2억 이상 기대하지 마시고 노력을 해보겠다’라고 하고 헤어졌습니다.”(주219) “(피고인 1이 2010년) 12월, (2011년) 1월 계속 3억 원을 저에게 이야기했고 또 제 마음속으로도 노력을 하겠다는 생각을 별도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 1 선생이 언젠가는 또 ‘1억 더 안될까요’라는 이야기를 하실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저도 피고인 2 선생에게 노력 좀 하라고 별도로 언질을 준 상태였기 때문에 그래서 피고인 1 선생과 만나면 피고인 1 선생이 그 이야기를 하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항상 있었습니다.”(주220)
같습니다. ”
했습니다. ”
했습니다. ”
것입니다. ”
있었습니다. ”
하고, 있다.
헤어졌습니다. ”
있었습니다. ”
피고인 3은 그즈음 피고인 2에게, ‘피고인 1의 경제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3억 원 정도가 필요한 것 같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피고인 2는 3억 원이라는 액수가 너무 커서 절대로 줄 수 없다고 하였으나, 피고인 3과의 수차례 대화, 처 공소외 8과의 상의 끝에 결국은 2억 원을 주겠다고 하였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피고인 1이 3억 원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을 전해 듣고 금액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으나, 처음 공소외 4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갚아주기로 했다는 금액이 1억 5, 000만 원 이었다는 점과 친구인 피고인 3의 권유라는 점을 고려하여 2억 원으로 정하였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기도 하였다. “12월 언제쯤에 피고인 3 교수가 저에게 ‘피고인 1 교수가 3억이 정말 필요할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제가 그 이야기를 듣는데 속으로 ‘악’ 소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피고인 3 교수는 피고인 1 교수와 접촉한 결과로 본인이 판단하기에는 ‘3억 원 정도를 지원하지 않고서는 피고인 1 교수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본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된다 안된다 그것은 말이 안된다.’라고 했습니다.”(주221)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1억 원 정도면 어떻겠느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1억 5천만 원 공소외 4 선생의 기준으로 이야기하다가 피고인 3 교수가 저한테 굉장히 간곡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피고인 3 교수는 저에게 ‘선거 빚이라는 그런 맥락을 감안해야 된다. 굉장히 큰돈이지만 선거 빚이라는 맥락을 감안하자. 자기가 보기에는 피고인 1 교수를 살리는데 3억 원은 필요할 것 같다. 굉장히 큰돈이지만 사람을 도울 때는 좀 후하게 도와줘야지만 감동도 있고, 그래야지만 하느님께서 굉장히 넉넉하게 갚아주신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간 것입니다.”(주222) “하지만 피고인 3 교수는 피고인 1 교수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했고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이야기를 저의 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뭐라고 이야기해도 2억 이상은 절대로 안된다. 죽어도 안된다.’라고 했습니다. 부조를 더 이상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주223) “물론, 저의 자산규모로 볼 때 2억 원이 굉장히 벅찬 금액입니다. 피고인 3 교수와 저는 보통은 생각은 같은데 금액에 관하여는 일치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라고 했지만, 피고인 3 교수가 고집하여 제가 피고인 3 교수에게 ‘너를 봐서 5천만 원을 보태마’라고 하여 2억 원을 주기로 한 것입니다. 제가 피고인 3 교수에게 ‘이것은 부조 아니거든, 이건 사랑이거든’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게 뭐 어려운 것이지만 여러 사람 살리고, 교육감직에 누를 끼치지 않는 방안이기 때문에, 정말 눈물을 머금고 어렵게 한 것입니다.”(주224) ● 같은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피고인 1 교수 측에는 처음에 2억 이상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피고인 2 교수한테는 3억 준비하라고 했는데 물론 저한테 2억 이상... 저도 알아요. 선거 이후에 빚도 많고 2억, 3억이 작은 돈도 아니고 그러니까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피고인 2에게) ‘2억 가지고 안된다. 3억 준비하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취지는 또 그것도 삶의 경험과 뭐에서 나온 거예요. 2억은 피고인 2 교수가 만들면 만드는 돈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그런 정도는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부부가 다 그렇고...(주225) 그런데 자기가 최대한으로 만들어서 주는 것과 최대한으로 만들 수 없는 것에 대해 도전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쪽은 지금 급한 사람이고 또 한쪽은 그냥 최대한 노력하면 만들 수 있는 돈인데 제가 보기에 ‘그것 가지고는 안되겠다. 정말 더 만들어서 줘야 이것이 정작 값진 돈이 되고 받는 사람쪽에서도 정말 감동이 된다. 이래야 정말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지 그냥 있는 돈을 준다고 해서는 지금 서로 고맙다는 소리도 별로 못 듣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공소외 7 교수에게 1억 더 준비하라고 해서 아마 그 이후에 2억은 금년도에 지불이 됐지만 피고인 1 선생쪽에서는 1억에 대한 준비도 계속 하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주226)
했습니다. ”
것입니다. ”
생각하였습니다. ”
것입니다. ”
그렇고...
있습니다. ”
한편 피고인 2는 2010. 12.경 처 공소외 8에게 합계 2억 원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알려주고, 공소외 8이 마련하기로 한 1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1억 원은 피고인 2가 지인으로부터 차용하겠다고 하였다.
공소외 8은 2011. 1.경부터 직접 현금을 모으기 시작하였고, 2011. 1.경 또는 2011. 2.경에는 자신의 친언니인 공소외 40에게 현금으로 5, 000만 원을 마련하여 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
피고인 1은 2011. 1. 17.경 피고인 3의 ♡♡♡♡대학교 연구실로 찾아가 피고인 3에게, 자신이 곧 미국으로 출국하니 미국에 있는 동안 금전을 일부라도 교부해 달라고 하면서 공소외 9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피고인 3은 그로부터 2일 뒤인 2011. 1. 19.경 ♡♡♡♡대학교교수모임에서 피고인 2를 만나 피고인 1이 곧 미국으로 출국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이 때 피고인 1에게 일부라도 금전을 지급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피고인 1은 2011. 2. 초순경 일산 백석역 부근에서 동생 공소외 9를 만나 피고인 3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 주면서, ‘이 사건 선거와 관련하여 단일화로 중도 사퇴하였기 때문에 선거비용 보전을 받지 못해 손실이 많이 생겼는데, 상대 후보 측에서 그 돈을 보전해 준다고 하니 네가 돈을 좀 받아다 달라.’고 부탁하고, ‘내가 외국에 가는데, 피고인 3 교수에게 연락이 오면 만나서 돈을 받고, 연락이 오지 않으면 네가 먼저 전화를 해서 물어 봐라.’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피고인 1은 그 자리에서 공소외 9에게, 자신이 받기로 한 금전의 액수가 2억 원이라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
그 후 피고인 1은 2011. 2. 10.경 연수 목적으로 미국으로 출국하였다가 2011. 2. 20. 귀국하였다 .
피고인 2는 2011. 2. 중순경 지인으로부터 현금으로 5, 000만 원을 빌려 공소외 8에게 주었다. 공소외 8은 위 5, 000만 원을 쇼핑백에 담긴 채로 다른 친언니인 공소외 10에게 건네주면서 피고인 3에게 전달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공소외 10은 그 부탁대로 2011. 2. 19.경 피고인 3의 ♡♡♡♡대학교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피고인 3에게 이를 전달하였다. 피고인 3은 같은 날 공소외 9를 위 교수 연구실로 불러 위 5, 000만 원을 건네주었다.
피고인 3과 공소외 9는 그 자리에서 채권자를 피고인 3으로, 채무자를 공소외 9로, 변제기를 ‘2011. 8. 30.’로, 이자를 ‘월 0.5%’로 기재한 현금차용증을 작성하고, 채권자와 채무자를 반대로 기재한 동일한 내용의 차용증을 함께 작성하여 1장씩 나누어 가졌다 .
공소외 9는 위와 같이 건네받은 현금 5, 000만 원을 자신의 처남인 공소외 19에게 건네주면서 공소외 9의 은행계좌로 입금하여 달라고 부탁하였고, 공소외 19는 자신의 처인 공소외 20에게 부탁하여 결국 2011. 2. 22.경 공소외 20의 이름으로 공소외 9의 은행계좌에 5, 000만 원이 입금되었다. 공소외 9는 위와 같이 입금된 5, 000만 원을 같은 날 다시 피고인 1의 계좌로 이체하였다 .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묻는 피고인 2의 변호인의 질문에 대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문답한 바 있다.(주233) “(문) 당시 피고인은 2억 원을 받을 당시에 단일화 합의의 이행으로서 받는다고 생각했나요. 아니면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주는 돈으로 받는다고 생각했나요. (답) 받을 때는 도와준다고 해서 그렇게 받았는데요.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제가 양보하고 했으니까 저는 민주진보진영이 저에게 부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아서 주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단일화의 합의금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주지도 않았고, 합의금이라고 말하면서 주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가 돈을 더 받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받을 때는 무슨 돈으로 받는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받기로 할 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모아서 주나보다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법원에 이 사건 기소된 다음에 2011. 9. 21.에 제가 제출한 의견서에 ‘피고인 3이 민주 진보 진영의 도의적 책무성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서 주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후보자 사퇴 대가 목적으로 2억 원을 받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적은 것이 저의 마음을 적은 것입니다. (문) 그 7억 원의 일부로서 받는다는 생각을 했나요. (답) 그 생각은 많이 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포기하고 단념을 했습니다. (문) 피고인 3도 역시 위 2억 원이 그것의 일부로서 주는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있었나요. (답) 그렇게도 안했고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하면서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주신 것입니다. 또 제가 돈을 직접 가서 받은 것이 아니고, 그때는 2억 원이 마련된 것도 아닙니다. 피고인 3 교수가 ‘최대한 2억 원이 마련될 것 같다. 그것도 한꺼번에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해서 제가 ‘되면 저의 동생에게 연락해서 거기로 오라고 해서 주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하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그 명목을 따지면서 주고받은 것은 정황상으로도 아닌 것입니다.“ ● 같은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 3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연구실에서 돈이 수수가 돼서 분명히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나쁜 의미였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소의 행위로서 볼 때는 그런 곳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점검을 해 봅니다.”(주234) “저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서 집에 비밀이 없습니다. 항상 다 이야기를 하고 정말 좋은 컴퓨터 세상에 아이디어를 집에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스태프는 저희 가족입니다.”(주235)
있다.
봅니다. ”
가족입니다. ”
그 후로 2011. 4. 중순경에 이르기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추가로 현금 1억 5, 000만 원이 위와 동일한 방법으로 공소외 10과 피고인 3을 순차적으로 거쳐 공소외 9에게 전달되었다. 구체적으로는, 2011. 3. 7.경 4, 000만 원, 2011. 3. 10.경 100만 원, 2011. 3. 24.경 900만 원, 2011. 4. 6.경 5, 000만 원, 2011. 4. 8.경 5, 000만 원이 전달되었다.
당시 피고인 2가 위 1억 5, 000만 원을 마련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 피고인 2가 지인으로부터 현금 5, 000만 원을 추가로 차용함 ● 공소외 10이 공소외 40으로부터 현금 5, 000만 원을 차용함 공소외 40은 2011. 1.경 또는 2011. 2.경부터 2011. 4. 4.경까지 약 2개월에 걸쳐 생활비 중 현금을 조금씩 모아 1, 500만 원을 마련하고, 공소외 40의 남편 공소외 41은 지인인 공소외 42로부터 현금으로 3, 500만 원을 차용함(주236) ● 공소외 8이 2011. 1.경부터 2011. 4.경까지 자신의 은행계좌 등에서 한 번에 수백만 원씩 현금을 인출하여 집에 보관하는 방법, 그리고 친언니인 공소외 10에게 계좌이체를 한 뒤 현금으로 인출하여 보관하여 달라는 취지로 부탁하는 방법으로 현금 5, 000만 원을 마련함
차용함
한편, 공소외 9는 위 1억 5, 000만 원 중 1억 4, 900만 원을 피고인 1에게 전달하였는데 당시의 전달 방법은 다음과 같다.(주237) ● 8, 000만 원은 위 (50)과 동일한 방법으로 공소외 19 또는 공소외 20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은행계좌에 입금하게 한 뒤 피고인 1의 은행계좌로 이체함 ● 1, 900만 원은 자신의 은행계좌 잔고 중 동일한 금액을 피고인 1의 은행계좌로 이체한 뒤 피고인 3으로부터 전달받은 금액은 공소외 9가 사용함 ● 5, 000만 원은 공소외 9가 쇼핑백에 든 채로 피고인 1을 직접 만나 차 안에서 전달함(주238)
같다.
전달함
● 현금 합계 1억 9, 900만 원을 위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입금을 부탁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고인 1에게 전달한 이유와 관련하여, 공소외 9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사실 저는 형님이(피고인 1이) 밤 늦게 저를 찾아 와서 현금으로 돈을 받아다 달라고 부탁할 때부터 이것은 불법적인 돈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처남 공소외 19나 공소외 20 명의를 빌어 현금을 입금하기도 하였고, 피고인 3 교수를 만나 돈을 받아 오면서도 가능하면 돈과 관련한 이야기는 적게 하려고 하였습니다.”(주239) ●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심스러워서 그랬습니다. 그 당시는 그런 의식(불법적인 돈이라는 의식)을 분명히 하고 한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피고인 3이 누구에게 전달하면 되겠느냐고 하여서 제가 동생 공소외 9에게 전달하라고 하였습니다.”(주240) “처음에 동생이 저에게 전화가 와서 ‘처갓집에서 빌려서 저에게 주고, 그쪽에 주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피고인 3 교수에게 돈을 받기는 했지만 피고인 3 교수가 조심을 해야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 같고, 저도 그런 잠재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동생에게 ‘그렇게 하자. 알아서 해서 나에게 붙여라.’고 했습니다.”(주241)
하였습니다. ”
하였습니다. ”
했습니다. ”
(5) 2억 원을 주고받은 이후의 상황
피고인 1은 위와 같이 전달받은 1억 9, 900만을 다음과 같은 용도로 사용하였다 .
● 1억 3, 000만 원을 개인 채무 변제를 위해 사용함
● 2, 000만 원을 친구 공소외 43이 투자하고 있는 캄보디아 석산 개발 회사에 보내줌
● 1, 000만 원을 현금으로 보유하면서 그 중 일부를 소비함
● 300만 원을 미국으로 출국하는 조카에게 건네 줌
● 불상의 금액을 처와 모친에게 건네 줌
●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 1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위 1억 9, 900만 원을 모두 채무 변제에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카드빚은 조금씩 갚았고, 나머지는 덩어리가 너무 커서 갚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주244)(주245)
있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 공소외 17, 공소외 7, 공소외 5는 2011. 4. 초순경 종로구에 있는 세검정 부근의 장어구이 식당에서 함께 만나 저녁 식사를 하였다.
피고인 2는 그 자리에서 피고인 1에게,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자문기구와 관련한 조례가 서울시의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변경되어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선출방식이 ‘위원들의 호선’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피고인 1이 부위원장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였고, 피고인 1은 이에 대하여 화를 내며 항의하였다.
● 공소외 17은 이 법정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피고인 2 교육감이 ‘조례가 만들어졌고,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호선에 따라 정해진다 그래서 부위원장도 간단치 않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주246) “피고인 1이 ‘위원장도 양보했는데 사람 바보로 만드냐, 그렇다면 자문위원회 참여를 안 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주247) “그때 피고인 1 교수가 화가 나서 두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떠는 것까지 제가 본 기억이 납니다. 그때 피고인 1 교수가 화를 잘 참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리를 정리할 적에도 화를 풀고 가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주248) ● 한편 피고인 1은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취지로 설명하였다. ‘피고인 2가, 부위원장은 교육감이 위촉하는 것이 아니고 위촉된 위원들이 호선으로 뽑게 되어 있어 피고인 1을 부위원장으로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였고, 피고인 1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도 유분수지 위원장도 양보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하느냐고 말하고 화를 내면서 다른 약속 자리에 가기 위해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공소외 17이 따라 나오며 피고인 1을 위로하였습니다.’(주249) ●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호선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제가 ‘부위원장도 그렇게 간단치가 않을 수가 있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주250) “피고인 1 교수가 ‘나도 바쁜 사람인데 그렇게 부위원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는 아예 안 하겠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피고인 1 교수님이 마음을 많이 내려놓으셨구나’ 하는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3월에 조례가 공표됐기 때문에 그 내용에 따라서 호선 방식이니까 어떤 1-2명이 안 됩니다 라고 하면 안 되거든요. 논란에 휩싸이는 순간에 호선 방식에서는 위원장이고 부위원장이고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리스크가 생겼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좀 강하게 반발하시면서 ‘아 그럴 거면 나는 아예 안 하겠다’라고 말씀을 하시리라고는 예상을 못했습니다. 그냥 그 팩트를 말씀드렸을 뿐인데 굉장히 강한 반응이 왔습니다.”(주251)
하셨습니다. ”
기억합니다. ”
기억합니다. ”
위로하였습니다. ’
있습니다. ”
왔습니다. ”
공소외 8은 2011. 4. 22.경과 2011. 4. 29.경 자신의 은행계좌에서 500만 원씩을 출금하는 등 그즈음부터 2011. 6. 중순경까지 현금으로 4, 000만 원을 마련하였고, 피고인 2는 앞서 1억 원을 대여해준 지인에게 위 4, 000만 원을 변제하였다 .
●●●●대학교 총장 선거가 2011. 5. 19.에 실시되었다. 당시 피고인 1은 위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
서울시교육청의 정책기획담당관실 및 교육감 비서실은 2011. 5. 하순경부터 2011. 6. 초순경 사이에 정책자문기구인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을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당시 정책기획담당관실에서는 67명의 인력풀을 작성하였고, 비서실에서는 그 중 30여 명을 자문위원 후보로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으며, 피고인 2는 그 중 27명을 자문위원으로 선정하였는데, 위 27명 중 2명이 자문위원 직을 고사하여 결국 25명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피고인 1은 위 25명에 포함되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
2011. 6. 17.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의 첫 번째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 자리에서 자문위원들의 호선 방식으로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선출되었는데, 자문위원 공소외 25의 추천으로 공소외 26이 위원장으로, 자문위원 공소외 15의 추천으로 피고인 1이 부위원장으로 각 선출되었다 .
피고인 1은 2011. 8. 13.경 공소외 7, 공소외 44를 피고인 1의 ●●●●대학교 교수 연구실로 불렀다. 그 자리에서 피고인 1은 공소외 44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공소외 7에게 자신이 피고인 3으로부터 금전을 교부받은 사실을 알려주면서 추가로 금전을 교부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공소외 7은 피고인 1에게 금전과 관련된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공소외 7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피고인 1이 저에게 ‘내가 좀 더 필요한데 아느냐. 연말까지 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어디서 좀 더 안 되냐’는 취지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 그렇게 하시겠지요. 저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주고받은 말이 무엇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주256) ●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공소외 7 교수가 오랜만에 왔습니다. 저는 공소외 7과 피고인 3 교수가 같이 마련해서 주는 창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소외 7에게 ‘피고인 3 교수에게 돈을 받았는데 그것 가지고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까.’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주257)
않습니다. ”
했습니다. ”
피고인 1은 2011. 8.경 이 사건과 관련하여 출국금지통보서를 송달받고 피고인 3에게 연락하여 2011. 8. 18.경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1층 커피숍에서 피고인 3을 만났다. 피고인 1은 그 자리에서 피고인 3에게 출국금지통보서를 보여주며 ‘2억 원을 받은 일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였는데, 피고인 3은 이에 대하여 ‘공소시효 6개월이 지났으니 괜찮다. 스캔들 정도일 뿐 오히려 아름다운 일이다.’는 취지로 대답하였다.
한편 피고인 1은 이 날 피고인 3과 헤어지면서 피고인 3에게 ‘추가로 금전을 교부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으나, 피고인 3으로부터 별다른 대답을 듣지는 못하였다.
5. 피고인들의 행위 동기에 관한 검토
가.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핵심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내용
이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피고인들이 공통으로 일관되게 주장하여 온 핵심적인 내용은 결국, 피고인 2와 피고인 3이 ‘선의’, 즉 선량한 의도로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
피고인 2와 피고인 3이 검사의 주장을 극렬하게 다투어 온 또 다른 부분들, 즉 i)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는 피고인 2가 절대로 승인하거나 추인한바 없다.’는 부분 및 ii) ‘2010. 11.경 피고인 1을 만났을 때 그가 정말로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경제적 곤궁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았다.’는 부분 등을 피고인들의 위 주장 내용과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된 취지는 ‘피고인 2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에 따른 이행의무 때문에 2억 원을 제공한 것이 아니다.’는 것, 그리고 ‘피고인 2가 장래에 부정한 이익을 얻기 위해 2억 원을 제공한 것도 아니다.’는 것으로 이해되고,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는 피고인 2와 피고인 3의 반복된 진술 내용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
나. 범죄의 성부와 위 주장 내용의 관계
법리적인 관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아래 ‘제6. 가., 나.항’에서 상세히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들의 이 부분 주장의 당부 자체는 ‘피고인들이 2억 원을 주고받은 행위가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위와 같은 주장 내용은 주로 ‘피고인 2와 피고인 3의 행위 동기’라는 영역에서 논의될 수 있는 내용 중 하나이지만, ‘장래에 공무원이 자신에게 유리한 직무행위를 하여 줄 것을 기대하고 금품을 제공하는 일반적인 뇌물공여행위’와 같은 사전대가제공·수수행위에 있어서 대가관계 판단의 고려요소인 ‘증뢰자의 동기’와, 이 사건과 같은 사후대가제공·수수행위에 있어서 ‘대가관계’ 판단의 고려요소인 ‘사후대가제공자의 동기’는 그 의미가 다르다.
다만 피고인들이 이 사건의 재판의 첫 준비기일부터 제22회 공판기일의 최후진술에 이르기까지 위와 같은 내용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바, 이 사건의 내용을 가능한 깊이 있게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피고인들의 위와 같은 주장의 당부를 별도의 항목으로 아래 ‘다.항’과 같이 검토해 보고, 다음으로 ‘제6.항’에서 이 사건 범죄의 성부를 논하기로 한다.
다. 피고인 2와 피고인 3이 2억 원을 제공한 동기에 관한 검토
(1) 피고인 3의 행위 동기
피고인 3이 ‘피고인 1에게 금전을 제공하자.’는 말을 피고인 2에게 꺼내게 된 동기와 관련한 피고인 3 자신의 진술 내용은 앞서 ‘제4. 나. (3) 항’에서 상세히 본 바 있다. 그 진술 취지는 결국, ‘피고인 1의 경제적 어려움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 후 이성적인 판단이 뒤따라왔다.’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피고인 3의 위와 같은 진술 내용은 충분히 수긍할 만 하다고 판단된다. 피고인 3은 처음부터 피고인 1과 피고인 2 사이의 갈등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에 피고인 2가 2억 원을 제공하는 과정에서도 피고인 3은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는 데까지 나아간 바는 없다. 피고인 3으로서는 그의 표현대로, 갈등 관계 해소를 위해 화해자의 역할을 해달라는 피고인 2의 부탁에 응하여 자신이 피고인 1을 몇 차례 만나면서 파악한 그의 상황과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피고인 2의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자신의 판단에 따라 양자의 화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와 같은 판단 내용의 합법성 여부를 떠나서, 피고인 3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① ‘피고인 2의 부탁’ 그 자체, 그리고 ② 양자의 화해를 위해서는 금전을 주고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스스로의 판단’ 그 자체가 피고인 3의 행위의 동기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위 ②의 판단 과정에서 피고인 3의 화해지향적인 평소의 가치관, 그리고 친구인 피고인 2가 교육감으로서 펼치고 있는 교육정책들이 피고인 1의 도움을 받아 성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 등이 상당 부분 작용하였다는 피고인 3의 상세한 설명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구체적으로는 피고인 3이 피고인 2에게 ‘피고인 1을 경제적으로 지원하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한 3가지 내용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는 앞서 ‘제4. 나. (4) 항’에서 상세히 본 바 있다.
(2) 피고인 2의 행위 동기
피고인 2는 자신이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제공한 이유에 대하여 ‘피고인 1 교수를 살리고, 친구들의 체면을 살리고, 진보진영의 도덕성을 살리며, 서울교육을 살리기 위해서였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
피고인 2의 위와 같은 표현은 피고인 2가 처한 2010. 10.경부터 12.경까지의 상황을 그 시점의 피고인 2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으로 이해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의 특징은, 피고인 2의 입장에서 볼 때,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1억 5, 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금원을 차용하고 처로 하여금 조금씩 현금을 인출하여 보관하는 수고를 하게 하면서까지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제공해야할 만한 동기를 ‘이해관계의 측면’으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는 데에 있다. i) 법률적인 측면에서 볼 때, 2010. 12. 2.로써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에 대한 공직선거법 상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피고인 2의 교육감 당선이 무효화될 여지가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ii) 정치적인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위 피고인이 현직 교육감으로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우선, 공소외 7이 2010. 11. 20.경부터 12.초순경 사이에 피고인 2에게 강하게 조언한 바와 같이, 피고인 1의 입장에서도 위와 같은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 1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 1은 2010. 11.경부터 다음해의 ●●●●대학교 총장 선거에 출마할 것을 검토하고, 2억 원이 제공될 즈음에는 이미 선거 출마 준비로 바쁠 정도로 공적인 사회활동을 계속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
이렇게 공적인 사회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의 명예에 치명적인 흠결이 될 위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경험칙상 쉽게 일어나기 힘든 일이고, 피고인 2가 2010. 10.경까지 피고인 1과 대립하면서 그를 격분하게 하였음에도 현실화되지 않은 일이다 .
당시 공소외 7의 조언을 받은 피고인 2 역시 이러한 측면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피고인 2는 2010. 11.경부터 피고인 3과 공소외 7을 피고인 1에게 보내 그와 대립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2010. 11. 28.경에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확인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인 1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공개하는 돌발행동을 할 가능성을 염려하여 피고인 2가 갑자기 거액의 금원을 지급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검사는 ‘피고인 2가 이미 피고인 1에게 금전을 지급하는 것을 전제로 피고인 3을 피고인 1에게 보내 피고인 1을 누그러뜨린 것이다.’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한다 .
그러나 위와 같은 검사의 주장은 앞서 ‘제4. 나. (3) 항’에서 상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을 피고인 1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만 일면적으로 분석한 결과 발생한 논리적 오류이고, ‘일의 선후관계’라는 측면에서 이 사건의 사실관계와 모순되어 들어맞지 않는다.
위와 같이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제공한 피고인 2의 행위 동기는 이해관계의 측면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요인들과 정치적인 이해관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피고인 2가 결국 2억 원을 제공하기에 이른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으로는 피고인 2가 자신의 처 공소외 8에게 위 2억 원의 제공에 대한 동의를 구하면서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 내용” 속에서 피고인 2의 위와 같은 복합적인 동기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다만 피고인 2가 제공한 금전의 금액이 2억 원으로 커진 데에는 ‘피고인 1로부터 3억 지급 요청을 받은 피고인 3의 설득’과 ‘종교를 중심으로 한 피고인 2·피고인 3의 특수한 관계’가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는 앞서 ‘제4. 나. (4)항’에서 본 바와 같다.
피고인 2가 공소외 8에게 설명한 내용은 앞서 ‘제4. 나. (4) (42)항’에서 상세히 본 바와 같이 ㉠ ‘공소외 5가 사고를 쳤다.’는 내용, ㉡ ‘피고인 1이 피고인 2의 말을 오해했다.’는 내용, ㉢ 피고인 1이 경제적으로 곤궁 상태에 있다는 내용 등이다. 위 ㉠과 같은 내용 속에서는 40여 년 간 친밀하게 지내온 친구인 공소외 5와 근 20년간 함께 활동해온 동료인 공소외 6이 자신의 당선을 위해서 금전 지급 합의에 관여하였다는 인식에서 오는 부담감이, (주267) 위 ㉡과 같은 내용 속에서는 ‘후보 단일화 이후 피고인 1은 선거비용 보전을 받지 못해 채무초과상태가 된 반면 피고인 2는 교육감에 당선되었다는 인식’에서 오는 윤리적 책무감이, (주268) 위 ㉢과 같은 내용 속에서 ‘민주진보진영’(주269)의 유력한 교육계 정치인사인 피고인 1이 처한 채무초과상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타적 동기(주270) 등이 엿보인다. 나아가 피고인 3이 피고인 2를 설득한 명분인 ㉣ “피고인 1을 포용하여 피고인 2가 교육감으로서 펼치는 교육개혁정책에 협력을 받아야 한다”는 명분과(주271) ㉤ “지금은 사이가 좋지만 다시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정치적 부담 요인의 제거’, 즉 향후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피고인 1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다시 폭로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을 예방한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의 측면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주272) 앞서 ‘제4. 나. (1) 내지 (5)항’에서 상세히 살펴 본 이 사건의 전개과정을 놓고 볼 때, 위 ㉠ 내지 ㉢과 같은 심리적인 요인들과 위 ㉣, ㉤과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들의 순차적·복합적인 작용 전체를 피고인 2의 행위 동기라고 평가함이 상당하다는 것이 이 법원의 판단이다. 앞서 본 ‘피고인 1 교수를 살리고, 친구들의 체면을 살리고, 진보진영의 도덕성을 살리며, 서울교육을 살리기 위해서였다.’는 피고인 2의 진술 역시 결국은 위와 같은 동기들의 압축적인 표현이라고 이해된다.
부담감이, 책무감이, ‘민주진보진영’
동기
명분과
보인다.
6. 범죄의 성부에 대한 판단
가.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에 대한 검토
(1)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가 금지하고 있는 행위의 내용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중 이 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은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공직선거법 제230조 제1항 제1호
에 규정된 행위 중 ‘금전을 제공하는 행위’ 또는 ‘공사의 직을 제공하는 행위’를 한 자, 그리고 위 ‘금전 또는 공사의 직을 제공받는 행위’를 한 자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 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부분”(이하에서는 이 부분만을 한정하여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이라고 한다)이다.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은 금품 등을 제공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금품을 제공하는 시기가 언제인지, 그리고 후보 사퇴 당시 금전지급합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일단 후보 사퇴행위를 한 자에게 그 사퇴행위와 대가관계에 있는 금품 등을 제공하는 모든 행위, 그리고 이를 수수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의 구성요건은 ‘금품 등을 수수하는 주체가 사퇴한 후보자일 것’(①), ‘금품 등이 실제로 제공되었을 것’(②), ‘사퇴행위와 금품 등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을 것’(③)이고, 여기에 더 나아가 모든 범죄에 공통된 주관적 구성요건인 ‘범의’의 내용으로서 ‘대가관계에 대한 인식’(④)이 있어야 한다.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인 1에게 제공된 2억 원과 관련하여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이 다투는 부분은 위 ③, ④의 구성요건이고,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직과 관련하여 다투는 부분은 위 ②, ③, ④의 구성요건이다.
(2)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의 입법목적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의 직접적인 입법목적은 ‘후보자 사퇴행위’가 금품 등 대가 지급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원칙, 즉 ‘후보자의 피선거권 행사의 불가매수성’를 확립하는 것이다.
특정한 행위의 불가매수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그 행위 이전의 대가제공·수수행위와 그 행위 이후의 대가제공·수수행위 모두를 금지하는 규제방식은 다양한 현행 법률 제도들 속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규제방식이다 .
사후의 대가제공·수수행위를 금지하는 입법취지의 핵심 중 하나는, 행위자의 입장에서 행위 이후 대가수수에 대한 기대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데에 있다. 이를 통해,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전 매수행위만 근절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폭넓게 사퇴행위를 매개로 금전을 수수하는 ‘선거 문화의 타락’을 막고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지켜내고자 함이다 .
(3)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의 특징
다만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의 특징은, 후보자 사퇴 이전의 대가제공·수수행위를
제1호
로, 후보자 사퇴 이후의 대가제공·수수행위를
제2호
로 나누어 규정하고, 제1호
의 경우에는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라는 요건을, 제2호
의 경우에는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라는 요건을 각기 정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위와 같은 규정 체계는 대가제공·수수 시점이 후보자 사퇴 전인가 후인가에 따라 그 행위의 사회적·경제적 유인이 달라진다는 점에 상당히 부합한다고 평가된다. 즉, 사회적·경제적 유인의 측면에서 이러한 대가제공·수수행위의 발생원인을 분석해 보면, 후보자 사퇴 이전의 대가제공·수수행위는 대가제공자가 다른 후보자의 사퇴를 유도하여 선거에서 이익을 취하는 양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후보자 사퇴 이후의 대가제공·수수행위는 이와 반대로 사퇴한 후보자가 이미 끝난 자신의 사퇴행위와 관련하여 그로 인해 선거에서 이익을 얻은 당선자 또는 다른 후보자로부터 대가를 취하는 양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후보자 사퇴 이전의 대가제공·수수행위는 ‘대가제공자’가 적극적인 역할을, 후보자 사퇴 이후의 대가제공·수수행위는 ‘대가수수자’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
(4) 범죄 성부 검토에 있어서의 유의점
피고인들의 행위가 과연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이 금지한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법률적으로 평가함에 있어서도, 이상에서 살펴 본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의 입법취지와 사후대가제공·수수행위 관련 조항으로서의 특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i) 피고인 1의 입장에서, 이미 끝난 자신의 후보 사퇴행위에 대한 사후 대가 수수의 기대가 충족된 것으로 평가되는지, ii) 피고인 2와 피고인 3의 입장에서, 위와 같은 대가성을 인식하면서도 금품 등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는지에 특히 관심을 두고 앞서 본 다툼이 있는 구성요건들에 대하여 검토하기로 한다.
나. 2억 원 제공·수수 부분의 범죄 성부에 대한 판단
2억 원 제공·수수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이 주로 다투는 범죄 구성요건은 ① ‘사퇴행위와 금품 등 사이에 대가관계’이지만, 앞서 ‘제5. 가.항’에서 본 피고인들의 주장 내용 및 피고인들의 이 법정에서의 전체적인 진술 취지를 범죄의 구성요건에 맞추어 선해하면, 주관적 구성요건인 ‘범의’와 관련하여 ② ‘피고인들에게 대가관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주장으로 확장하여 이해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다툼이 있는 위 ①, ② 구성요건에 대하여 차례로 본다.
(1) 피고인 1의 후보 사퇴행위와 2억 원의 대가관계
(가) 대가관계의 판단기준
법률적인 의미에서 이 사건 2억 원의 ‘대가성’은, 이미 끝난 ‘피고인 1의 후보 사퇴행위’(급부)와 그 이후에 제공된 ‘2억 원’(보수 또는 반대급부 )이 급부와 보수 또는 반대급부로서의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는 위 2억 원의 명목이 무엇인지와는 관계가 없다(대법원 1997. 4. 17. 96도3378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사후의 대가제공·수수행위’라는 이 사건 공소사실의 특성, 즉 ‘피고인 1의 후보 사퇴행위’(급부)로 인하여 피고인 2가 ‘후보 단일화’라는 이익을 얻는 과정이 이미 완결되었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의 특성 상, 사후에 금품을 제공한 사람이 그 제공 시점에 어떠한 부정한 이익을 기대하였는지 여부의 문제, 즉 앞서 ‘제5. 나., 다.항’에서 살펴 본 문제 역시 위 2억 원의 대가성 판단에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
이미 끝난 ‘피고인 1의 후보 사퇴행위’(급부)와 위 ‘2억 원’(반대급부)이 대가관계에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은 객관적인 요소들, 즉 사퇴한 후보자와 금품제공자의 관계, 특히 사퇴한 후보자의 후보 사퇴행위(급부)로 인하여 금품제공자가 얻은 이익이 있는지 여부, 금품의 다과, 금품을 제공·수수한 시기와 경위 등이다.
(나) 위와 같은 판단기준의 의의
예를 들어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1이 이 사건 2억 원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였는가’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한편으로는 “당시에는 제가 11. 28. 그런 오해(피고인 2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승인하고도 모른척하였다는 피고인 1의 오해)나 이런 것이 해소됐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피고인 3 교수의 인품의 자장 속에 피고인 1 교수가 들어왔다라고 저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오해의 소지는 적어도 피고인 1 교수한테는 사라져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라고 진술(㉠)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현금으로 은밀하게 제공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단 돈이 제공되는 순간 피고인 1 쪽에서는 이를 합의금의 이행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피고인 1의 그러한 판단 내용이 소문을 타고 알려지는 것을 우려했다 .’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피고인 2의 위와 같은 두가지 진술은 언뜻 서로 모순되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위 ㉡과 같은 피고인 2의 우려는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 즉 ‘피고인 1이 2억 원의 성격을 무엇으로 이해할지 우려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한 측면이 있다. 즉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스스로 진술하였듯이, 현재까지도 위 2억 원의 성격을 ‘피고인 1이 후보를 사퇴하여 피고인 2가 교육감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받는 금전’이라고 이해하고 있고, 피고인 1의 동생 공소외 9는 검찰에서, ‘피고인 1이 2011. 2.경 공소외 9에게 피고인 3의 연락처를 알려주면서, 상대 후보 측에서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일부 돈을 주기로 했다는 취지로 설명하였다.’고 진술하기도 하였다. 피고인 1이 위 2억 원의 성격을 위와 같이 이해하고 있는 이유는, 금전 수수에 대한 피고인 1의 기대가 ‘자신의 후보 사퇴행위로 인한 이득을 피고인 2가 얻었다.’는 객관적인 요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객관적인 요소에서 비롯되는 금품의 실체는 금품을 제공하는 일방당사자의 의사로 쉽게 바꿀 수가 없다. 금품을 수수하는 상대방으로서는 금품의 명목이나 금품 제공자의 동기가 무엇이든지 관계없이, 그 금품의 실체를 규정하는 객관적인 요소들이 동일하다면 실질적으로 동일한 기대의 충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
(다) 대가관계의 존부
그런데 이 법원에서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사정들을 앞서 본 판단기준에 비추어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면, 결국 피고인 1의 후보 사퇴행위와 그가 제공받은 2억 원 사이에는 대가관계가 존재한다고 넉넉히 인정된다.
① 금품제공자와 사퇴한 후보자와의 관계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1과 피고인 2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2억 원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
법리적으로는, 금품 제공자와 금품 수수자 쌍방 간에 특별한 사적 친분관계가 존재하여 교분상의 필요에 의해 금품을 주고받은 것으로 명백하게 인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대가성은 부정될 수 있다(대법원 1998. 2. 10. 선고 97도2836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 사건에서 피고인 1과 피고인 2 사이에 무상으로 2억 원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사적인 친분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이 사건 선거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만나게 된 사이일 뿐 아니라 이 사건 선거 이후에도 수개월 동안 갈등관계에 있었다. ‘◁◁’이라는 식당에서의 2010. 10. 22.자 만남에서는 피고인 1이 피고인 2를 인격적으로 비난하고 피고인 2는 이에 맞서 다른 사람들이 옆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언쟁을 벌어졌고, 고성을 들은 비서관의 연락으로 부근에 있던 공소외 7이 찾아오기까지 하였다. 위 피고인들이 위와 같은 갈등관계를 해소하고 화해의 자리를 처음 가졌다고 진술하고 있는 2010. 11. 28.자 모임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2010. 11. 28.과 피고인 2가 피고인 3에게 금전 지급 의사를 처음 밝힌 2010. 12. 초순경 사이의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10여 일에 불과하다. 위 10여 일은 사회통념상 피고인 1과 피고인 2 사이의 친분관계가 질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2010. 11. 28.자 모임 이후로도 2011. 4. 8.경 피고인 1이 피고인 2로부터 2억 원을 모두 지급받을 때까지 피고인 1과 피고인 2가 사적으로 단둘이 만난 자리는 한 번도 확인되지 않는다. 피고인 2와 피고인 3의 이 법정에서의 진술처럼 피고인 3이 1992년경 피고인 2로부터 조건없이 1억 2, 000만 원을 지급받은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수십 년 동안 특별한 신뢰와 친분을 쌓아온 피고인 2와 피고인 3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그마저도 종교적인 의미부여를 거쳐야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② 후보 사퇴행위로 인하여 금품제공자가 얻은 이익이 있는지 여부
피고인 2는 이 사건 선거에서 피고인 1의 후보 사퇴행위로 인하여 ‘후보 단일화’의 정치적인 이익을 얻었다.
피고인 1은 2010. 5. 19. 18:30경 환경재단 ☆☆☆☆☆홀의 기자회견장에서 후보 사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공소외 22 전(前) 교육감이 망가뜨린 서울교육을 살리기 위해 피고인 2로 후보를 단일화한다.’고 발언하였고, 그 자리에 피고인 2가 함께 참석하여 피고인 1과 함께 손을 맞잡는 모습이 ‘민주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라는 내용의 기사와 함께 언론을 통해 방송·보도되었다. 2010. 5. 20. 피고인 2의 인터넷 블로그에 ‘피고인 2-피고인 1 후보 단일화에 대한 입장’, ‘민주진보 유일후보 피고인 2, 완전 단일화로 부패교육기득집단과 한판승부!’, ‘선거승리로 교육정상화 열망을 실현하는 것이 단일후보로서의 사명’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되었고, 피고인 1은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에 ‘서울시교육감 후보직을 사퇴함으로써 피고인 2 후보와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다.’, ‘민주진영 최후 단일 후보가 되신 피고인 2 후보께 축하를 드리며, 곽후보의 당선을 위하여 제가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다 하려고 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였다. 이후 피고인 1은 실제로 피고인 2 선거사무소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2010. 6. 2. 이 사건 선거 당시 피고인 2의 옆 자리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보기도 하였다 .
나아가 결과적으로 피고인 2는 이 사건 선거에서 교육감으로 당선되었다.
위와 같이 후보 단일화로 인한 ‘사퇴 후보’와 ‘단일 후보’라는 관계는 사회통념상 피고인 1과 피고인 2의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인정될 뿐 아니라 피고인 1이 피고인 2로부터 2억 원을 수수할 수 있었던 주요한 기반이라고 평가된다. 피고인 1도 이 법정에서 ‘자신이 후보를 사퇴하여 민주진보진영의 교육감이 탄생하였기 때문에 2억 원을 준 것으로 안다.’고 진술한 바 있고, 피고인 2 역시 이 법정에서 위와 같은 관계가 ‘특수한 관계’이고, 스스로 그러한 관계로부터 책무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였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
다만 피고인 2는 이와 관련하여, 위와 같은 특수한 관계는 2억 원을 제공하게 된 여러 가지 필요조건들 중 하나일 뿐이고, 그것보다는 ‘피고인 2는 피고인 1이 후보 사퇴로 인하여 경제적 곤궁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2억 원을 제공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 2 스스로도 이 법정에서 ‘만약 피고인 2가 교육감으로 당선된 사람이 아니었다면 피고인 1이 사퇴해서 굉장히 어려운 형편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100만 원 정도 냈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바, 위와 같이 주고받을 금액의 규모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줄 만큼의 주요한 요소라면 이를 단순히 여러 필요조건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기는 어렵고, 2억 원을 주고받게 된 결과와 상당한 인과관계를 가지는 조건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피고인 2가 진술한 ‘피고인 2는 피고인 1이 후보 사퇴로 인하여 경제적 곤궁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2억 원을 제공한 것이다.’라는 표현이 피고인 2의 입장에서 금전을 제공하게 된 동기를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측면은 있지만, 여전히 위와 같은 ‘사퇴 후보’와 ‘단일 후보’라는 관계가 피고인 1과 피고인 2가 2억 원을 주고받게 된 주요한 기반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
③ 금품의 다과
비록 수수한 금품이 대가관계의 외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그것이 사회상규에 비추어 볼 때에 사교적 의례의 범위 내에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대가성이 부정된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이다(대법원 1996. 12. 6. 선고 96도144 판결
등 참조).
그러나 피고인 1이 제공받은 2억 원이라는 금전의 액수는 명백히 의례적인 범위를 초과한다. 이와 관련하여는 피고인 2 스스로도 이 법정에서, ‘처음 피고인 3으로부터 피고인 1이 3억 원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듣고 악 소리가 났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물론 이 부분과 관련하여, 피고인 1이 선거비용 지출로 인하여 수억 원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는 특수한 상태였다는 점, 이 때문에 피고인 2가 처음 예상하였던 것보다 큰 규모의 금전을 지급하게 되었다는 점은 인정되고, 또 결과적으로 피고인 1이 요청한 금액을 피고인 2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보다 낮은 금액을 제공한 점 역시 분명히 인정된다.
그러나 여전히 위 2억 원이 사회통념상 의례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금액을 명백히 초과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뿐 아니라, 피고인 2의 이 법정에서의 진술 내용처럼 위 피고인이 수차례 각 1억 원 정도의 금액을 주변에 대가 없이 기부한 전례가 있었다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위 2억 원을 마련한 전후의 경위, 즉 2억 원 중 1억 원을 지인으로부터, 5, 000만 원을 가족으로부터 차용하는 방법으로 마련한 점,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제공한 뒤에서 다시 2개월에 걸쳐 현금으로 4, 000만 원을 마련하여 지인에 대한 위 차용금 중 일부를 변제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2억 원은 피고인 2의 입장에서도 의례적인 기부액수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④ 금품을 제공·수수한 시기 및 경위
피고인 1이 피고인 2로부터 처음 금전을 제공받기 시작한 시점인 2011. 2. 19.은 피고인 1의 후보 사퇴행위가 이루어진 2010. 5. 19.로부터 무려 9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정은 위 후보 사퇴행위와 금전 사이에 대가관계가 미약하다는 점에 부합하는 듯한 정황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제4. 나. (4)항’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실질적으로는, 피고인 1은 위 9개월 동안의 과정에서 줄기차게 금전을 제공받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피고인 1 스스로 인정하듯이 사퇴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0. 11. 19.경까지는 명시적으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이행을 주장하였고, 2010. 11. 23.경 이후로 금전 지급 합의에 대하여는 언급을 중단하기는 하였으나 공소외 7에게 계속하여 ‘좋은 관계로 지내는 것도 좋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였고, 피고인 3과 금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1억 원은 안된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그즈음 피고인 3이 ‘2억 원을 주겠다.’고 하였을 때에도 ‘금액이 적어서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후 피고인 3으로부터 2억 원을 지급받기로 하는 과정에서도 추가로 더 지급을 요청하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2011. 8. 18. 피고인 3을 만난 자리에서 추가 지급이 가능한지 묻기도 하였으며, 금전 지급 시기와 관련하여도 2010. 12. 22.경에는 ‘연말까지 일부라도 달라.’고 하였고, 2011. 1. 17.경에는 피고인 3을 찾아가 ‘2011. 2.경에 미국으로 출국하니 그 때 일부라도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후 피고인 1은 2011. 2. 초순경 동생 공소외 9를 만난 자리에서 ‘상대 후보 측에서 선거비용을 보전해주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2011. 4. 초순경 피고인 2를 만난 자리에서는, 당시는 공소외 9가 피고인 3으로부터 2011. 4. 6.자 5, 000만 원과 2011. 4. 8.자 5, 000만 원을 건네받아 피고인 1에게 전달하고 있던 도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직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피고인 2에게 강하게 화를 내기까지 하였다.
2010. 11. 28.경 이후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위와 같은 피고인 1의 태도는 도저히 ‘무상성을 띈 2억 원’을 제공받는 사람의 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피고인 1은 2억 원을 제공받은 이후 이 사건 재판과정에 이르기까지 피고인 2에게 ‘무상으로 2억 원을 제공해 주어 고맙다.’는 취지의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
피고인 1의 이 법정에서의 진술 내용 중 다음과 같은 부분, 즉 ‘피고인 1로서는 피고인 3과 공소외 7이 2010. 11. 17.경 및 2010. 11. 19.경에 이미 돕는 방법을 찾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그 후로는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돈만 받으면 되었다.’는 부분, ‘피고인 3이 1억 원을 주겠다고 하여 황당하였다.’는 부분, ‘일단 2억 원을 받고 이후 다시 얘기해서 더 돈을 받으려고 하였다.’는 부분, 그리고 앞서 여러 번 보았던 ‘내가 사퇴하여 민주진보진영의 교육감이 탄생하였기 때문에 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부분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 1이 어떠한 기대를 가지고 위 2억 원을 수수하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피고인 1의 입장에서는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로 인하여 형성된 기대, 즉 ‘피고인 1이 사퇴하면 그로 인하여 단일 후보가 되는 급부를 취하는 피고인 2로부터 그에 대한 보수 또는 반대급부로 선거비용 보전을 위한 금전을 수수할 수 있다.’의 기대가 2억 원의 범위 내에서 충족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라) 소결론
위 ① 내지 ④의 요소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선거 과정에서의 피고인 1의 후보 사퇴행위(급부)와 피고인 1이 피고인 2로부터 제공받은 2억 원(보수 또는 반대급부) 사이에 대가관계가 존재한다고 넉넉히 인정된다.
다만 위와 같은 대가관계를 피고인들, 특히 피고인 2와 피고인 3이 인식하였는지 여부의 문제는 대가관계의 객관적인 존재와는 별개로 주관적인 범의의 문제이므로, 이에 대하여는 항을 바꾸어 추가로 논의한다.
(2) 대가성의 인식 여부
(가) 대가성 인식의 판단기준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의 문언은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의 목적으로’라고 되어 있다. 형사법상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요소가 반드시 있어야만 범죄가 성립하는 이른바 ‘목적범’의 경우에는 그 목적의 대상이 되는 ‘결과 발생’의 요소가 존재하여야 하고, 법문 자체에 그러한 요소가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 .
그러나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에는 목적의 대상인 ‘결과 발생’의 요소가 규정되어 있지 아니하다. 위 조항의 법문은 단순히 ‘대가의 목적’이라고만 규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대가’는 어떠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사물의 성질’이고, 그러한 사물의 성질로서의 ‘대가성’은 금품 제공행위 당시에 이미 갖추어져 있어야 범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위와 같은 ‘목적범’을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고, 법문에서 ‘대가의 목적으로’라고 표현한 것은 ‘대가의 의미로’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범죄의 주관적인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범의’가 입증되어야 하며, 이러한 ‘범의’에 대하여는 엄격한 증명이 요구된다(대법원 2002. 3. 12. 선고 2001도2064 판결
등 참조).
통상 ‘범의’란 인지적인 요인으로서의 ‘인식’과 의지적인 요인으로서의 ‘용인’으로 구성되지만(대법원 1985. 6. 25. 선고 85도660 판결
등 참조), 대가인 금품을 제공·수수하는 행위처럼 피고인의 행위 자체가 구성요건의 전부인 경우에는 피고인이 대가성을 인식하면서도 금품을 제공·수수하는 것 자체가 그 결과를 용인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대가성의 인식’이 범의를 구성한다. 나아가 그러한 인식은 불확정적인 것이라도 이른바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보아야 하며, 이러한 불확정적인 인식이 존재하였는지 여부는 사물의 성질상 피고인 인식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통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1995. 1. 24. 선고 94도1949 판결
등 참조).
(나) 피고인 1의 대가성 인식
피고인 1은 한편으로는 ‘내가 후보를 사퇴하여 피고인 2가 교육감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피고인 2 측이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영에서 돈을 모아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가라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고, 나아가 그 ‘진영’의 의미에 대하여는 ‘교육감 후보 추대위와 관련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
그러나 이 법정에서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과 앞서 ‘제4. 나. (3) 내지 (5)항’에서 본 인정사실들에 나타난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인 1은 피고인 3을 처음 만난 2010. 11. 17.자 모임에서 공소외 7로부터 “이 분한테 이야기하시는 것은 피고인 2 교육감께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만큼 신뢰가 있는 분입니다.”라고 피고인 3을 소개받았던 점, ② 이에 따라 피고인 1은 2010. 11. 17.자 만남과 2010. 11. 19.자 만남에서 피고인 3에게 2010. 5. 19.자 합의의 경위를 설명하면서 피고인 2를 원망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냈고, ‘피고인 2는 나보다(피고인 1보다) 형편이 낫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하였으며, 반대로 피고인 3은 피고인 2의 입장에서 ‘피고인 2는 그 합의를 몰랐다.’, ‘피고인 2도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라고 해명하였던 점, ③ 피고인 1은 당시 피고인 3과 함께 피고인 1을 찾아온 공소외 7을 2010. 12.경부터 2011. 1.경 사이에 수차례 사적으로 만나 그에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를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공소외 7은 ‘피고인 2에게 전달하겠다.’고 대답하기도 하였던 점, ④ 피고인 1의 동생 공소외 9는 검찰에서, 피고인 1이 2011. 2. 초순경 공소외 9에게 직접 ‘상대 후보 측에서 선거비용 보전을 위해서 돈을 주기로 했다.’는 설명을 하였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2 측이 금전을 지급해 주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는 피고인 1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인 1은 위 2억 원을 피고인 2 측으로부터 제공받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나아가 앞서 ‘제6. 나. (1) (다) ④항’에서 상세히 살펴 본 ‘2억 원을 지급받는 과정에서의 피고인 1의 행동들’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 1은 위 2억 원의 대가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다) 피고인 2와 피고인 3의 대가성 인식
1) 피고인 3의 인식
피고인 3은 위와 같이 ‘무상성을 띈 2억 원을 지급받는 사람의 행동으로는 도저히 평가하기 어려운 피고인 1의 태도’를 2010. 11.경부터 2011. 1.경까지 직접 피고인 1을 접촉하면서 경험하였다. 사회통념상 2억 원은 법률상 지급 의무 없는 자가 지급하는 금원으로 보기에는 거액임에도 불구하고 ‘2억 원은 부족하므로 받지 않겠다.’고 하는 피고인 1의 태도로 인하여 피고인 3은 ‘맡긴 돈 같이 이야기하지 마시라’고 대응하기까지 하였다. 피고인 3은 피고인 1이 ‘위 2억 원을 합의금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기 때문에 위와 같이 대응하였다.’는 취지로 설명하지만, 오히려 당시 피고인 1의 태도가 이미 위 2억 원을 무상으로 제공되는 금원이 아니라 후보 사퇴행위에 대한 대가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태도였다는 사정이 피고인 3의 위 대응을 통해서 확인되는 측면이 있다. 심지어 피고인 3 스스로도, 자신의 위와 같은 대응 이후에도 ‘피고인 1이 추후에 돈을 추가로 요청할 것이 예상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피고인 1의 태도를 잘 알고 있었던 피고인 3으로서는, 위 2억 원의 성격이 ‘후보 사퇴행위에 대한 보수 또는 반대급부라는 피고인 1의 기대를 충족하는 대가성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2) 피고인 2의 인식
한편, 피고인 2는 피고인 3과 달리 금전 지급 문제와 관련하여 피고인 1을 직접 상대한 적이 없고, 피고인 3으로부터 간접적으로 피고인 1의 태도를 전해듣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피고인 1의 위와 같은 태도를 직접 경험한 바는 없다.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 2는, ‘피고인 1이 합의금을 요구하던 태도에서 자발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로 바뀐 것으로 알았다. 피고인 3으로부터 그렇게 들었다.’고 진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피고인 2의 입장에서도, 비록 2010. 12. 초순경 금액을 정하지 아니한 채 피고인 1에게 금전을 지급하겠다는 의사만을 처음 밝힌 시점에는 위와 같은 금전의 성격을 인식하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피고인 1이 3억 원을 요청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한 시점, 즉 2010. 12. 초순경부터 2010. 12. 22.경 사이에는 위 금원이 후보 사퇴행위에 대한 보수 또는 반대급부에 대한 피고인 1의 기대를 충족하는 대가성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3억 원이라는 금액은 사회통념 상 특별한 사적 친분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요청할 수 있는 ‘무상성을 띈 금액’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다. 피고인 2 스스로도 이 법정에서, ‘피고인 1이 필요로 한다는 돈이 3억 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악 소리가 났다.’라고 수차례 진술한 있다. 비록 그 후 피고인 2가 실제 제공한 금전의 액수는 3억 원보다 작은 2억 원이었지만, 위 2억 원 역시 피고인 2 스스로가 부조의 범위를 넘어선 금액이라고 인정하고 있을 정도로 거액의 금액이다 .
지금까지 위 2억 원이 ‘후보 사퇴와 대가관계가 있는지’, ‘피고인 2에게 대가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법리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사실,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피고인 2 스스로의 법정 진술내용 자체가, ‘2억 원과 후보 사퇴는 대가관계가 있고, 피고인 2는 대가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법률적으로 평가되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대가성 ㉠ “피고인 3 교수가 저에게 ‘피고인 1 교수가 3억이 정말 필요할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제가 그 이야기를 듣는데 속으로 ‘악’ 소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피고인 3 교수는 피고인 1 교수와 접촉한 결과로 본인이 판단하기에는 ‘3억 원 정도를 지원하지 않고서는 피고인 1 교수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본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된다 안된다 그것은 말이 안된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주295) ㉡ “하지만 피고인 3 교수는 피고인 1 교수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했고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이야기를 저의 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뭐라고 이야기해도 2억 이상은 절대로 안된다. 죽어도 안된다.’라고 했습니다. 부조를 더 이상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주296) ㉢ “제가 피고인 3 교수에게 ‘너를 봐서 5천만 원을 보태마’라고 하여 2억 원을 주기로 한 것입니다. 제가 피고인 3 교수에게 ‘이것은 부조 아니거든, 이건 사랑이거든’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게 뭐 어려운 것이지만 여러 사람 살리고, 교육감직에 누를 끼치지 않는 방안이기 때문에, 정말 눈물을 머금고 어렵게 한 것입니다.”(주297) ㉣ “문 만약 피고인 2가 교육감으로 당선된 사람이 아니고 그냥 ♡♡♡♡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선거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그런데 피고인1이 사퇴해서 굉장히 어려운 형편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때에도 이 2억 원을 도와주었을 것 같나요. 답 그랬을 리는 없습니다. 그 경우에는 민교협 차원에서 만약 모금운동을 하면 저는 100만 원 정도 냈을 것 같습니다.”(주298) →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 ㉡, ㉢의 진술내용에서 ‘2억 원은 피고인 2의 입장에서도 의례적인 범위를 넘는다.’는 점이, ㉣의 진술내용에서 ‘의례적인 범위를 넘는 금액을 제공하게 된 주요한 이유가 피고인 1이 후보직을 사퇴하여 피고인 2가 단일 후보가 되었기 때문이다.’는 점이 엿보인다. 위 두 가지 요소가 곧 ‘법률적인 측면에서 대가관계의 판단기준’과 일치한다. ② 대가성 인식 ㉠ “만약에, 제가 진영에다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예를 들어 출판기념회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이겠지요, 십시일반을 하는 것이니까. 그러면 진영사람들이 대거 올 것이 아닙니까. 그런 것을 하게 되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 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피고인 1 교수 측에서는 결국 5. 19. 동서간 합의 이행 차원에서 이것을 하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 있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말은 퍼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주299) ㉡ “5. 19. 단일화 당시는 저는 금전 합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 1 교수가 그렇게 뒷돈거래를 한 것이라면 부조책임을 사실은 오염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2단계로 부조책임을 경감시킬 요인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저의 확고한 입장이었습니다.”(주300) ㉢ “선거에서 비용은 모두 아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쓴 비용을 다른 사람에게 보전을 해달라는 것은요. 그 사람은 돈이 아깝지 않나요. 사실 인간적으로 인지상정으로 도와달라고는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법이 말하는 클린 핸드가 아닙니다. 깨끗한 선거가 아니지요.”(주301) → 위 ㉠, ㉡, ㉢의 진술내용에서 ‘사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피고인 1의 태도를 피고인 2가 알고 있었다.’는 사정이 엿보인다. 이를 법률적으로 평가한 내용이 곧 ‘대가성의 인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③ 실질적으로는, 피고인 2는 법률적인 의미에서의 대가성을 인식하면서도 그에 개의치 않고 ‘내 입장에서는 의무가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돕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2억 원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는 피고인 2 스스로도 이 법정에서 “피고인 1이 2억 원을 어떤 돈으로 인식할지에 대하여 크게 개의치 않고 어쨌든 ‘내가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나는 도와주는 것이다.’는 생각을 한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하여 “예. 그렇습니다. 이것이 일방적 성격이 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주302)
하였습니다. ”
생각하였습니다. ”
것입니다. ”
같습니다. ”
있습니다. ”
입장이었습니다. ”
아니지요. ”
있다.
(3) 피고인 2와 피고인 3의 ‘법률의 부지’ 진술에 대한 검토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사전약속 여부와 관계없이 사퇴행위 이후의 대가제공·수수 모두를 금지’하는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과 같은 규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피고인 3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피의자신문조서에 자필로 ‘실정법의 테두리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는 취지로 기재한 바 있다 .
피고인 2가 2010. 10. 중순경부터 2010. 10. 20.경 사이에 공소외 7과 공소외 5를 통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후에도 2010. 10. 22.경 피고인 1과 공소외 6을 함께 만난 자리에서 피고인 1의 합의 이행 요구를 거절하고 언쟁을 벌였던 점, 그 후 피고인 2는 공소외 5와 함께 피고인 1을 만나겠다는 공소외 7의 의견을 거절하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2가 초기에 나름대로는 자신이 위법이라고 인식한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와 단절하기 위하여 노력한 정황들이 엿보인다. 이러한 정황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의 존재를 알았다면 달랐을 것이다.’는 취지의 피고인 2의 진술이 단순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보이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법리적인 측면에서는, 단순히 법률 조항을 알지 못하였다는 사정은 범죄의 성립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형법 제16조
는 ‘자기가 행한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한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단순한 법률의 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범죄가 되는 경우이지만 자기의 특수한 경우에는 법령에 의하여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그릇 인식하고 그와 같이 그릇 인식함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8도11679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정당한 이유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행위자에게 자기 행위의 위법의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하거나 조회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 자신의 지적능력을 다하여 이를 회피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다하였더라면 스스로의 행위에 대하여 위법성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다하지 못한 결과 자기 행위의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여부’라는 기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이러한 위법성의 인식에 필요한 노력의 정도는 구체적인 행위정황과 행위자 개인의 인식능력 그리고 행위자가 속한 사회집단에 따라 달리 평가한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이다(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5도3717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을 위와 같은 기준에 비추어 보면, 법학교수들인 피고인 2와 피고인 3의 지적능력을 고려할 때, 위 피고인들로서는 단순히 법률조항만 확인하였더라도 위 피고인들의 행위가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의 구성요건에 포섭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은 구성요건이 단순할 뿐 아니라 그 문언의 의미도 비교적 명확하다. 2억 원이라는 거액의 금원을, 그것도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당사자인 피고인 1에게 제공하기로 결정하면서 법률조항 조차 확인하지 아니한 위 피고인들의 행위를 ‘자신의 지적능력을 다하여 이를 회피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다하였음에도 스스로의 행위에 대하여 위법성을 인식할 수 없었던 경우’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위 피고인들이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는 사정은 이 사건 범죄의 성부와는 관련이 없다.
(4) 2억 원 제공·수수 부분의 소결론
결론적으로, 피고인 1은 자신의 후보 사퇴행위와 대가관계에 있는 2억 원을 그 대가성을 인식하면서 피고인 2와 피고인 3으로부터 수수하였고, 피고인 2와 피고인 3은 위 2억 원을 역시 그 대가성을 인식하면서 피고인 1에게 제공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한다.
다. 공사의 직 제공·수수 부분의 범죄 성부에 대한 판단
(1) 이 부분의 핵심 쟁점
앞서 ‘제2.항’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부분 공소사실과 관련하여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은 i)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부위원장 직을 제공하였다는 사실관계 자체와 ii) 그 대가성 및 iii) 대가성의 인식을 모두 다투고 있는바, 그렇다면 ii), iii)의 법률적 평가의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우선 i)과 같은 사실관계의 문제가 확정되어야 한다.
위 i) 부분 쟁점과 관련하여 앞서 ‘제4. 나. (1) ⑤, (4) 항’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피고인 2가 이 사건 선거 당시 및 2010. 12. 11.경 피고인 1에게 ‘정책자문기구의 위원장으로 위촉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언행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애초에 피고인 2가 피고인 1을 정책자문기구의 부위원장으로 위촉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부분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울특별시 조례의 내용이 부위원장 선출 방식을 자문위원들의 호선 방식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부위원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는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부위원장 직을 제공하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반복하여 진술하고 있고, 실제로 증거들에 의하면 2011. 2. 23. 및 2011. 2. 25. 서울특별시 의회 교육위원회 회의 및 본회의에서 관련 조례를 의결하면서 부위원장 선출 방식을 애초의 입법예고안과 달리 호선방식으로 변경하여 의결한 사실이 확인되며, 피고인 2의 변호인은 ‘검사가 실제로 어떤 행위를 통해 부위원장 직이 제공되었다는 것인지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 쟁점과 관련하여 핵심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위와 같은 조례 제정 이후의 시점에 피고인 2가 실제로 피고인 1에게 부위원장 직을 제공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행위를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이다.
(2) 위 쟁점에 대한 판단
이와 관련하여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증거로는 피고인 1의 다음과 같은 내용의 법정진술, 즉 ‘2011. 4. 초순경 세검정 부근 장어구이 식당에서의 식사 자리 이후 그 자리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 사람은 피고인 1이 식당을 먼저 나간 이후에 식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피고인 2에게 피고인 1을 부위원장으로 예우해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고 전해왔다.’는 취지의 진술이 있다 .
그러나 위 진술은 그 자체로도 피고인 2가 어떠한 의사를 표현하였다는 내용이 아니어서 이 부분 쟁점 판단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피고인 2는 2011. 4. 초순경 세검정 부근 장어구이 식당에서 있었던 위 식사 자리에서 피고인 1에게 ‘부위원장은 교육감이 위촉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이 때문에 피고인 1이 화를 내기까지 하였던 점, ② 2011. 6. 17. 개최된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의 첫 번째 회의에서 피고인 1을 부위원장으로 추천한 자문위원인 공소외 15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2 또는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들로부터 부위원장 추천과 관련하여 언질을 받은 것이 전혀 없고, 그 자리에서 위원들의 면면을 보고 피고인 1의 이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판단이 들어 그를 부위원장으로 추천한 것이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당시의 상황과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 근거를 상세히 진술한 점, ③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의 구성을 위한 실무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자문위원 인력풀을 작성한 정책기획담당관실의 공소외 27, 그리고 위 인력풀을 30여 명으로 줄여 피고인 2에게 보고한 교육감 비서실의 공소외 28은 검찰에서 일치하여, 피고인 2가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의 위원장으로 공소외 26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부위원장 자리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문위원 선정 과정에서 이를 논의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④ 자문위원을 선정하고 2011. 6. 17.차 회의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서울시교육청 내부 기안 문서들을 보더라도, 인력풀 명단 및 자문위원 명단에 공소외 26은 항상 첫 번째 순번으로 기재되어 있는 반면 피고인 1은 문건마다 60번째 순번, 18번째 순번, 16번째 순번, 3번째 순번 등으로 기재되어 있고, 회의 좌석배치도에도 공소외 26은 피고인 2를 마주보는 위치에 좌석이 배치되어 있는 반면 피고인 1은 자문위원들 사이에 섞여 있어 별다른 특색을 찾아 볼 수 없는 점, ⑤ 실제로 2011. 6. 17.자 회의 내용을 녹음한 녹취파일 및 녹취록을 확인해 보더라도 회의 당시 피고인 1이 절차적으로 정상적인 추천 및 호선을 거쳐 부위원장으로 선출되는 과정이 확인되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 2는 피고인 1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는 이외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고, 다만 자문위원들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피고인 1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한 것으로 보이며, 달리 검사의 주장을 인정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
(3) 부위원장 직 제공·수수 부분의 소결론
결국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부위원장 직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만한 행위를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은 앞서 본 ii), iii) 부분 쟁점을 판단할 필요도 없이, 무죄로 인정한다 .
7. 변호인들의 기타 주장에 대한 판단
가. 공소시효 관련 주장
(1) 주장내용
피고인 1의 변호인은, 공직선거법 제268조
의 공소시효에 관한 규정 중 ‘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6월’이라는 부분(이하 ‘공소시효 연장 부분’이라 한다)은 선거일 후 행하여진 모든 범죄에 대하여 적용되어서는 아니되고, 다만 당해 선거일로부터 6월 내에 행하여진 범죄에 대하여만 한정하여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위 변호인의 주장취지는 공직선거법이 단기간의 공소시효를 정한 목적이 형해화되지 않도록 위와 같은 공소시효 연장 부분을 제한하여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2) 판단
살피건대, ① 선거범죄의 경우 당해 선거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선거일로부터 단기간 내에 확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 ② 그리고 위 변호인의 해석론에 따르면 선거의 효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선거범죄의 공소시효가 선거일로부터 12월 내에 만료하게 되어 예측가능성이 확보된다는 점 등은 인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론은, 공소시효 연장 부분 자체가 ‘선거일 후 행하여진 범죄’라고 정하고 있을 뿐 그 범죄의 발생시점에 대하여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거일 후 6개월 내에 행하여진 범죄’로 한정하여 해석할 실정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입법론적인 의미가 있을 뿐 해석론으로서 채택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위 변호인의 위와 같은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나.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의 해석론 관련 주장
(1) 주장내용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공통적으로,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을 ‘후보자 사퇴 이전의 부정행위의 연장선에서 금품 제공이 이루어진 경우’에만 처벌하는 것으로 한정하여 해석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 즉 이 사건과 같이 ‘후보자(피고인 1)의 사퇴행위 당시’에 아무런 부정행위를 하지 아니한 당선자(피고인 2)가 사후에 금품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2) 판단
그러나 위와 같은 해석론은 법문의 구성요건 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법률조항의 체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위 조항의 제1호
는 사퇴행위 당시의 모든 부정한 개입을 별도로 처벌하고 있다. 가령 금전 지급을 약속하는 의사표시만 하여도
위 조항의 제1호
로 처벌된다.
위 조항의 제2호
는 사퇴 이후에 새롭게 대가 제공을 요구하거나 대가 제공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실제로 대가 제공을 하는 경우를 처벌하는 것이다.
가령, 후보자 사퇴 이후에 금품을 제공·수수(ⓐ)하였는데, 사퇴 이전에 이미 금품 등 제공의 약속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진 경우라면, 위 ⓐ 행위는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의 구성요건을, 위 ⓑ 약속은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1호
의 구성요건을 각기 충족한다. 다만 후행하는 위 ⓐ 행위가 위 ⓑ 약속의 이행행위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에는, 선행행위인 위 ⓑ 약속은 후행하는 위 ⓐ 행위에 대한 관계에서 법리적으로 이른바 불가벌적 사전행위, 즉 ‘금품 등 제공·수수행위에 일반적·전형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다른 구성요건적 행위로서 그 구성요건의 불법내용이 금품 등 제공·수수행위에 비하여 경미하고 새로운 법익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해당하여 별도의 처벌이 고려되지 않고, 죄수에 있어서 ‘금품 등 제공·수수행위’의 1죄로 모두 흡수될 뿐이다(대법원 2002. 3. 15. 선고 2001도970 판결, 대법원 1978. 9. 26. 선고 78도1787 판결
등 참조).
한편,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인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를 ‘사전의 부정행위가 있었던 경우’에만 처벌하는 것으로 한정하여 해석하여야 할 근거로, 공직선거법 제117조
의 기부행위금지조항과
제118조
의 답례행위금지조항 등 사후대가제공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다른 규정들이 있다는 사정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① 논리적인 측면에서 다른 규정들의 존재가 이 사건 적용법률조항의 축소해석의 근거가 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②
공직선거법 제117조
의 기부행위금지조항은 외관상 무상성을 띄고 있는 기부행위를 규제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 이 사건 법률조항이 규제하는 대가제공행위와 규제의 대상이 다르고, 공직선거법 제118조
의 답례행위금지조항은 사후매수가능성 뿐 아니라 선거비용 증가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선거운동에 관여하지 아니한 일반 선거구민’에 대한 답례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사퇴한 후보자에 대한 대가제공행위를 금지하는 이 사건 법률조항과는 규율 범위와 요건이 다르다.
따라서 위와 같은 변호인들의 해석론은 실정법적인 근거가 없어 받아들이기 어렵다.
8. 결론
가. 이 사건의 사실관계 요약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피고인들이 주고받은 ‘2억 원’을 중심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제18대 서울특별시 교육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진행 중이던 2010. 5. 19. 오전에 피고인 1은 공소외 4에게 후보 단일화와 관련하여 협상 권한을 위임하면서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금전을 지급받는 문제와 관련하여 피고인 1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협상해달라고 부탁하였다.
● 2010. 5. 19. 14:00경 공소외 4는 인사동에 있는 ‘◇◇◇’이라는 찻집에서 공소외 5와 공소외 6을 만나 ‘피고인 2 측이 피고인 1 측에 5억 원을 지급하되 피고인 1이 후보를 사퇴하여 피고인 2로 후보 단일화를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하였다.
● 피고인 1은 같은 날 공소외 4로부터 피고인 2가 위 합의를 승인하였다고 보고받았다. 다만 공소외 4는 합의금액을 ‘피고인 2가 당선되면 7억 원, 낙선하면 5억 원’이라고 보고하였다. 한편, 공소외 6은 공소외 5에게 위 합의 사실을 피고인 2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하였고, 공소외 5도 피고인 2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
● 피고인 1은 같은 날 피고인 2로 후보 단일화를 하기 위해 사퇴한다는 기자회견을 하였고, 피고인 2는 피고인 1과 정책연대를 하겠다고 밝혔다.
● 피고인 2는 2010. 6. 2. 치러진 이 사건 선거에서 교육감으로 당선되었다.
● 그 후 공소외 6과 공소외 5는 위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 2010. 7.경부터 2010. 10.경 사이에 피고인 1과 공소외 4, 공소외 13 등은 공소외 6과 공소외 12 등 피고인 2의 선거운동에 관여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위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이행을 주장하였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 1은 피고인 2의 교육감 집무실로 2차례 찾아갔고 그 자리에서 피고인 2와 언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 2010. 10. 8. 국정감사장에서 피고인 2는 모 국회의원으로부터 ‘피고인 1이 이상한 소문을 내고 다니고 있으니 내용을 꼭 알아보아라.’는 조언을 듣고 공소외 17과 공소외 7에게 순차적으로 ‘후보 단일화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할 것’을 지시하였다.
● 2010. 10. 중순경 피고인 2는 공소외 7을 통해 ‘공소외 5와 공소외 4가 2010. 5. 19. 금전 지급 합의를 한 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 2010. 10. 20.부터 2010. 11. 초순경 사이에 공소외 5와 2차례, 공소외 6과 1차례 만나 화를 내며 위 보고의 진위를 확인하였다.
● 2010. 10.경부터 2010. 11.경 사이에, 피고인 2는 피고인 3과 공소외 7에게 피고인 1과의 화해를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 2010. 11. 17. 및 2010. 11. 19. 피고인 3과 공소외 7이 피고인 1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피고인 1은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경위를 설명하면서 피고인 2에 대한 분노, 선거비용 관련 채무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피고인 3은 위 합의는 피고인 2가 보고받거나 승인한 바 없어 효력이 없다고 말하면서, 다만 피고인 1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그 후 2010. 11. 23. 피고인 1, 피고인 3, 공소외 5 등이 함께 만나 식사를 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 2010. 11. 28. 피고인 3과 공소외 5의 주선으로 피고인들과 공소외 5가 함께 만나 식사를 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그 술자리에서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악수와 포옹을 나누고 시를 읊는 등 화해의 계기를 가졌다. 2010. 12. 4.에도 피고인 1과 피고인 3, 공소외 5가 함께 만나 식사를 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 2010. 12. 초순경 피고인 3은 피고인 2에게 카드 돌려막기 등을 하고 있는 피고인 1의 경제적 고통과 포용의 필요성, 향후 분쟁 재발 방지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피고인 1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자고 말하였고, 피고인 2는 그 말에 동의하였다. 한편 그즈음부터 2011. 1.경 사이에 피고인 1은 공소외 7을 수차례 만나 선거비용 지출로 인한 부채문제 해결을 요청하였다.
● 2010. 12.경부터 2011. 1.경 사이에, 피고인 3은 피고인 2에게는 ‘3억 원을 주자.’고 하고, 피고인 1에게는 ‘2억 원 이상은 안된다.’고 하였다. 피고인 2는 금액이 지나치게 많다며 반대하였고, 피고인 1은 2억 원은 너무 적어서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 피고인 3의 거듭된 설득으로 피고인 2는 2억 원을 마련하기로 하였고, 피고인 1은 일단 2억 원을 받겠다고 하였다.
● 2010. 2. 19.부터 2010. 4. 8.까지 6차례에 걸쳐, 피고인 2는 피고인 3을 통해 현금으로 합계 2억 원을 피고인 1에게 전달하였다.
● 2010. 4. 초순경 피고인 1, 피고인 2, 공소외 17 등이 만나 식사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피고인 2는 교육감 정책자문기구 부위원장의 선출방식이 호선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피고인 1이 부위원장이 될지 알 수 없다고 하였고, 피고인 1은 이에 항의하였다.
● 2010. 8. 18. 피고인 1은 피고인 3을 만난 자리에서 추가로 경제적인 지원이 가능한지 물었으나 피고인 3은 별다른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나. 이 사건 쟁점들에 대한 판단 결과 요약
앞에서 살펴본 이 사건의 쟁점들에 대한 이 법원의 판단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피고인 2가 후보 단일화 당시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
● 피고인 1의 요청을 받은 공소외 4는 2010. 5. 19. 피고인 2 선거사무소의 선거대책위원장인 공소외 6, 회계책임자인 공소외 5와 만나 후보 단일화 조건으로 5억 원을 지급받기로 합의하였으나, 공소외 6, 공소외 5는 피고인 2에게 위 합의 사실을 숨겼다.
● 피고인 2는 2010. 10. 중순경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② 피고인 2가 2억 원을 제공한 동기
● 피고인 2는 뒤늦게 알게 된 공소외 5와 공소외 6의 행위로 인한 부담, 카드 돌려막기 등을 하고 있다는 피고인 1의 채무초과상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이타적 동기, 자신의 당선으로 인한 윤리적 책무감과 향후 분쟁 재발의 소지를 없앤다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모두 순차적·복합적으로 작용
하여, 피고인 1에게 2억 원을 지급하기로 하였다고 평가된다.
③ 2억 원의 대가성
● 위 2억 원은, 자신의 후보 사퇴로 인하여 이익을 얻은 피고인 2로부터 그 대가를 수수한다는 피고인 1의 기대를 충족시킨 것으로, 위 후보 사퇴행위와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다.
따라서 2억 원 제공·수수 부분은 유죄로 인정한다.
④ 공사의 직 제공 여부
● 피고인 1은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들의 자발적인 호선 절차
를 거쳐 정상적으로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따라서 공사의 직 제공·수수 부분은 무죄로 인정한다.
다. 결어
이상에서 살펴본 사실 인정 및 판단 결과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